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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76) 임종
  • 편집국
  • 등록 2024-09-11 16:2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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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에는 노인 환자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임종을 자주 대하게 된다. 임종(臨終)이란 마지막을 지켜본다는 의미이다. 


김 할머니는 88세로 쇠약하여 노환으로 입원하신지 3년이 넘었다. 아들이 이름난 조폭이다.

“원장님, 우리 어머니 잘 보살펴주이소. 만약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면 이 병원 확 뒤집어 버릴 겁니다”하고 겁을 준다. 

이런 말을 들으면 불편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효심이 지극한 아들이구나’하고 마음이 짠해지기도 한다. 

김 할머니는 고랑고랑하면서도 그럭저럭 잘 버티셨는데 열이 나며 기력이 급속하게 떨어져 숨이 넘어가게 되었다. 아들에게 전화하여 어머니가 곧 돌아가시겠으니 가족들에게 모두 연락하여 병원으로 오라고 하였다. 

김 할머니는 탁상에 예수고상이 세워져있는 천주교인이다. 가족들이 도착하기 전에 김 할머니는 운명하셨다. 

“우리 어머니 어떻게 되었어요?”하면서 팔에 문신을 한 아들을 선두로 대여섯 명의 가족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가족들을 모두 병상 곁으로 모이게 했다. 손을 천천히 들어 올리며 천주교인이 늘 하는 성호를 그었다. 가족들에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최소한의 시간이 필요하다. 의사가 성호를 그리는 그 짧은 시간에 가족들은 할머니의 죽음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조금 전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우리 엄마가…” 

아들은 말을 잇지 못하고 모친의 얼굴을 감싸 안으며 울었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요양병원에 맡겨둔 자식들은 부모가 언젠가 죽을 줄 안다. 하지만 막상 부모의 죽음을 맞이하면 크게 당황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환자가 입원할 때 꼭 환자 본인과 가족의 종교를 확인하여 사망을 알릴 때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말보다 환자와 가족에게 적합한 말을 쓰려고 노력한다. 개신교인이 죽으면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랬더니 가족 중 한 사람이 ‘할머니가 천당가셨대요’하며 울면서도 기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영혼을 믿는 사람이다.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말하면 가족들도 정서적인 안정을 찾겠지만 이제 막 이승을 떠나려던 망자의 영혼이 나의 말을 듣고 영적 안정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불교신자이면 가족들 앞에서 잠시 묵념하며 ‘조금 전 이승을 떠나셨습니다. 극락왕생하십시오’라고 말한다. 그러면 가족들이 한층 평안함을 느낀다. 종교가 특별히 없는 분에게는 ‘돌아가셨습니다’라고 말하는데 우리 선조들이 어떻게 이런 좋은 표현을 사용해왔는지 놀라곤 한다. ‘돌아가시다’는 말은 원래 있던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사망(死亡)이라는 말은 죽어서 없어진다는 의미라 이 말을 쓰기를 싫어한다.  

기독교에서는 소천(召天)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늘나라로 돌아갔다는 의미이다. 열반에 들었다느니 영면(永眠)에 들었다느니 좋은 표현이 얼마나 많은가. 

 

가족들에게 한 사람의 죽음을 고지하는 순간은 참으로 엄숙한 시간이다. 죽음이란 한 인간이 태어나 살다 늙고 병들어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닌, 생의 아름다운 완성이라는 의미를 그 순간에 가족들에게 전하고 싶다. 사람의 영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로 가셔서 우리 자손들을 사랑스럽게 지켜보고 있다는 의미를 전하고 싶다. ‘선생님, 환자가 숨을 곧 거두겠습니다’하고 병동에서 연락이 오면 빨리 환자의 종교적 배경을 확인하고 무슨 말로 가족들을 위로할 것인지 생각한다. 

요양병원에 오신 환자들을 잘 보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임종의 순간에 가족들의 오래되고 아픈 마음을 잘 보듬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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