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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75) 내 인생의 마침표는 내가 찍는다
  • 편집국
  • 등록 2024-08-21 15: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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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할아버지는 84세로 황달 증세가 있고 소변이 콜라색으로 나와 큰 병원에서 검사하니 담관암으로 진단을 받았다. 고령으로 수술은 하지 못하고 담즙이 흘러나올 수 있게 내시경으로 배액관을 넣는 시술만 하고 다른 병원을 거쳐 우리 병원으로 왔다. 보호자인 딸이 간호사 출신이었다. 

“선생님, 아버지에게 절대 암이라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이전 병원의 선생님은아버지가 석 달밖에 못 산다고 하여 아주 화가 났습니다. 어떻게 그런 막말을 할 수 있습니까?” 

입원하여 그럭저럭 지내다가 정말 3개월이 지나니 열이 나고 구토를 하며 전신상태가 갑자기 악화되었다. 


많은 암 환자들이 생애 마지막 한두 달 전까지는 그런대로 지내다가 갑자기 악화되어 2~3주만에, 어떤 사람은 4~5일 만에 급격히 나빠져 사망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고령의 암 환자들 중에는 종종 가족들이 암이라는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다. 최근 통계를 보니 말기암을 고지받는 경우가 83% 정도라고 한다. 

80이 넘은 고령자에게 말기암이라는 말을 하는 것은 부정적인 면이 클 수도 있다. 치료도 할 수 없는데 모르고 편안히 가시는 게 낫지 굳이 말기암을 알려 득 될 것이 무엇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암 치료과정에 우울증에 빠져 자살하는 사람도 가끔 있다. 하지만 고령이고 치료방법이 없다손 치더라도 암이라는 사실을 환자에게 알리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남은 시간이 3개월밖에 되지 않는다 해도 3개월은 인생을 정리하기엔 결코 짧지 않은 아주 소중한 시간이다. 치료할 방도도 없고 병원에 입원하여 죽음만을 기다릴 바에야 차라리 집에서 가족과 친지, 친구들을 만나며 빚이 있으면 빚도 해결하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고 인생을 정리하며 지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사람은 한 번 태어나 누구나 죽는다. 주위의 가족들이 환자를 위한다고 하는 행동이 어쩌면 환자가 마지막 정리를 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빼앗기도 한다. 



하루는 어떤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나의 진료실을 찾아왔다. 그 사람과는 일 때문에 크게 다툰 적이 몇 번 있었다. 

“조 원장님, 제가 말기암을 진단받아 몇 달 살지 못합니다. 떠나기 전에 원장님과 불편했던 일 정리하러 왔습니다. 그동안 제가 힘들게 했던 일 모두 용서해 주십시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선해진다고 했던가. 그 말을 들으니 그분에 대한 악감정이 눈 녹듯이 없어졌다. 

“저도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 용서하십시오. 부디 정리를 잘 하시고….” 

나쁜 기억으로 가득했던 그분의 모습이 그렇게 선한 이미지로 바뀔 줄은 몰랐다. 그분은 나를 만난 후 한 달 후에 돌아가셨다. 이 분은 말기암으로 진단받고 몇 달 남은 그 소중한 시간에 병원에 다니며 시간을 소진하지 않고 인생을 차분히 정리하며 정신적 빚을 갚으러 다닌 것이었다. 마지막 순간에 편안히 미소를 지으며 떠났을 것이 충분히 연상되었다. 

 


이 할아버지가 열이 나고 구토가 심한 날이었다.

“원장님, 제 병이 정확하게 무엇입니까? 병원에 가니 간에 염증이 있어 치료하면 낫는다고 말만 하는데 이렇게 오랫동안 낫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가족들과의 약속 때문에 말기암이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가족에게 연락을 하였다.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데 혹시 큰 병원으로 가시겠습니까?”

“큰 병원에 가도 뾰족한 수가 없는데 원장님이 끝까지 맡아서 치료해 주십시오.”

“이번 주말을 넘기기 어려울 수 있으니 가족들 모두 면회를 하라고 해주세요.”

“이번 추석에 집에 며칠 모시려고 했는데 이렇게 빨리 헤어질 시간이 오리라고는  생각을 못 했습니다.”



80대 암 환자를 겪어보면 의식은 50~60대 젊은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다. 내가 80대 암 환자라면 나의 병을 바르게 알고 싶고 그리고 여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고 싶고 남은 시간을 내가 선택하여 정리하고 끝맺음을 잘 하고 싶다. 

남은 소중한 시간을 삭막한 병원에서, 의료진에게 끌려다니며 보내고 싶지 않다. 오래 살아 나의 때가 묻어있는 거실에서 창밖을 보기도 하고 자녀들과 찍은 앨범을 보고 즐거웠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배우자의 손을 잡고 자녀들의 배웅을 받고 싶다. 

이 세상에 태어나 자녀를 낳고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에게 ‘수고했다, 이젠 갈 시간이야’하고 위로하면서 생을 마무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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