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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66) 갈 때 정 떼고 간다
  • 편집국
  • 등록 2024-03-27 14:2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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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66) 


갈 때 정 떼고 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이다. 시골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형님에게서 어머니가 위독하여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부랴부랴 달려가 보니 어머니가 의식이 없고 음식을 못 드셔 피골이 상접해 있었다. 20년 전이라 요양병원 같은 시설이 없었다. 치매 등으로 전신상태가 악화되어 의식도 없고 얼굴이 새카맣게 변하고 볼이 쑥 들어가 마치 미라같이 보였다. 


셋째 형도 와서 보고는 오늘 밤이 아마도 이승에서의 마지막 밤 같은데 하룻밤이라도 어머니 곁에서 자자고 말했다. 늘 그리워했던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무섭게 변하여 마음이 떨려 어머니 곁에서 자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밤 2시나 되었을까 형이 나를 깨웠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보니 정말로 어머니가 숨을 쉬지 않았다. 형들은 눈물을 흘리며 큰 소리로 서럽게 울었는데 나는 눈물이 나오지 않아 당황스러웠다. 밖을 보니 보름달이 휘영청 밝게 비치고 있어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저승 갈 때 정을 떼고 간다더니 어떻게 그처럼 외면하고 싶은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주는 것일까? 


 

대천가의 봄

간암 말기 박명호(73세)씨도 비슷한 경우였다. 3년 전 간에 콩알만 한 종양이 있어 내시경으로 제거 수술을 하였는데 1년이 지나니 갑자기 커져 3차 병원에서 종양제거수술을 하고 2년간 항암약물치료를 하였다. 증상이 재발하여 작년 6월 다시 개복수술을 해보니 복부까지 다 퍼져 7월에 본원에 오셨다. 나날이 쇠약해지며 복수가 차면 다시 빼고를 반복하였다. 한 달 후에 퇴원하여 귀가하였다. 

재입원하면서 배우자와 면담을 했다. 


“집에 모시고 왔지만 식사를 거의 못하여 뉴케어(캔으로 된 영양식)를 먹였습니다. 섬망이 생기고 이상행동도 하고 통증이 심하여 결국 다시 모시고 왔습니다. 남편이 수술하고 제가 3년이나 그 힘든 장루관리를 하였습니다. (장루: 직장이 막힐 때 옆구리에 만든 인공항문으로 대변을 배출하는 시술로 환자에게 극심한 부담을 주고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남편은 젊었을 때 제재소를 운영했는데 70~80년대 아주 잘되어 돈도 많이 벌었지요. 하지만 보험을 전혀 넣지 않아 지금은 너무 힘듭니다. 3차 병원에서 한 달에 440만 원 하는 항암제를 구해 먹었는데 부작용이 심하여 고환에 진물이 나고 입안이 헐어 절반도 못 먹고 그만두어야 했습니다. 환자가 오래 못 살 것은 알고 있으니 죽을 때까지 아프지 않게만 해주십시오.” 


11월 말 죽기 4일 전 배우자를 만났다. 

“원장님, 이번에 큰 아들이 해외출장 갈 일이 있는데 가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의사라고 어찌 다 알겠습니까마는 지금 상태로는 며칠 못 갈 것 같습니다.”

죽기 이틀 전 아들 둘이 와서 임종 면회를 하였다. 환자는 이제 의식도 없고 눈도 튀어나오고 눈동자에 흰자위만 보였다. 복수는 차고  얼굴은 살이 빠져 뼈와 가죽만 남아 무섭게 변하였다. 산소마스크를 썼지만 목에서 끓는 물소리 같은 소리가 멀리서도 들릴 정도였다. 둘째 아들이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결국 울음을 터뜨리면서 병실에서 뛰쳐나왔다. 

“선생님, 그 당당하셨던 아버지가 이렇게 야위고 비참한 모습을 보니 안타까워서 정말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제발 고통스럽게 끌지 마시고 편안히 보내주십시오.” 


저승 갈 때는 있는 정 없는 정 다 떼고 간다더니 지켜보는 가족들도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것이 보였다. 환자는 오전에 아들과 가족을 다 만나고 오후에 편안히 돌아가셨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부모의 병이 오래될수록 가족 모두 경제적인 어려움과 정신적인 고통을 받는다. 특히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아프면 그 가족들이 겪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식들에게 험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두는 것은 어떨까? 숨넘어갈 때 갈비뼈가 부러지도록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콧줄 영양으로 억지로 삶을 이어가는 것 보다, 본인이 미리 뜻을 분명히 밝혀 두면 훨씬 자연스럽고 존엄한 생의 마지막을 맞이할 수 있다. 


죽음이란 목 뒷덜미를 잡혀 끌려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저세상에서 나를 안내하러 온 분을 웃으며 반갑게 맞이하는 것이다. 인근 보건소나 국민건강보험공단 지부에 가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고 등록하는 데 10분도 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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