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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45) 병실의 한 모습
  • 편집국
  • 등록 2023-03-09 15:3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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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리며...


필자가 근무하는 요양병원에는 한 층에 대개 50여 개의 병상이 있다.  1인실이 한두 개 있고 2~3인실이 두세 개 있으며 대부분 6~8인 이상의 다인실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는 12인실 등까지 있었지만 코로나 사태 이후 전염예방 차원에서 8인실 이하로 인원이 조정되었다. 

각기 다른 개성과 성장환경, 질병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병실을 쓰는 바람에 갈등도 있고 싸움도 종종 일어난다. 말싸움이 몸싸움으로 번지는 경우도 있다. 

놀라운 점은 싸움을 할 때는 노령자가 젊은 사람처럼 무섭게 변한다는 사실이다. 


하반신 마비가 있고 오른팔도 마비가 있어 꼼짝 못하고 누워있는 정 할머니와 걸어 다니는 송 할머니가 싸웠는데…. 어찌 된 일인지 걸어 다니는 송 할머니가 크게 두들겨 맞은 적이 있다. 

“니는 송장처럼 누워 있제, 나는 그래도 걸어 다닌다.” 

시도 때도 없이 대변을 보아 식사시간에까지 악취를 풍기는 정 할머니에게 화가 나 이렇게 비아냥거렸던 것이다. 

기저귀를 차게 되어 그렇지 않아도 자존심이 상하는 판에 화가 난 정 할머니가 지나가는 송 할머니를 마비가 없는 왼손으로 잡아채어 이빨로 물고 하여 혼을 내준 것이다. 싸움을 목격한 다른 환자에 따르면 싸울 때 정 할머니의 오른팔도 마비가 풀려 오른팔 팔꿈치로 상대의 등짝을 찍었다고 한다. 


50~60대 환자 중엔 몸싸움이 격하여 이마가 찢어져 봉합해야 할 경우도 있다. 이런 젊은 축에 속한 환자들은 울분에 차있는 경우가 많아  비위에 거슬리는 말을 들으면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이다. 요양병원도 일반사회와 전혀 다름이 없다. 

단지 병 있는 노령자와 일반병원에 오래 입원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사회라는 점이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시기, 질투, 갈등, 분노가 다 있다. 대부분은 체념하고 몸싸움 상황까지 가지 않지만 욕설 싸움은 오래간다. 병실에도 방장이 있다. 다인실에서 TV 리모컨을 쥔 사람이 제일 높은 방장이다. 리모컨을 두고 싸우는 경우도 자주 있다. 


환자가 처음 입원하면 좋든 싫든 새로운 환경과 한방 사람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에 첫 3~4일이 제일 힘든 기간이다. 그  기간에 환자를 잘 관찰하여 병실도 조율해 보고 위치도 바꾸어주고 환자를 정서적으로 제일 편안한 상태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입원하여 병이 호전되어 퇴원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옆 친구들과 의지하면서 집보다 외롭지 않고 의료진의 보살핌을 받아 가며 병에 대한 두려움을 덜고 남은 생을 행복하고 든든하게 보낼 수 있는 곳이 요양병원이다. 


간혹 요양병원에 입원시키면 환자를 묶어두고 방치한다는 소문이 있어 요양병원에 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종종 인지가 저하되어 낙상 위험이 있는 환자는 묶어두기도 한다. 노인들은 낙상하면 대퇴골 골절이 잘 발생한다. 골절이 되면 수술 여부를 떠나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낙상 예방을 위해 묶어두는 것이다. 노인의 대퇴골 골절은 수술을 해도 빨리 회복되지 않고 침상에서 죽을 때까지 지내는 경우가 많다. 


환자가 치매가 심하거나 섬망 증세가 있어 통제불능일 경우 개인 간병인을 쓰는 것도 한 방법이다. 장기요양이 필요한 경우는 매연과 소음이 심한 도심을 피해 공기 좋은 숲속 요양병원이 좋다. 요즘은 요양병원도 많이 생겨 서로 경쟁하고 차별화하기 때문에 잘 찾아보면 편한 요양공간과 비슷한 아픔을 함께하는 환우와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곳이 많다. 부부가 함께 살다가 한쪽이 먼저 떠나면 외롭고 식사가 안되며 치매 증세까지 생겨 요양병원을 찾는 경우도 있다. 속병이 있더라도 팔다리가 건강하면 스스로 걸어 다니고 환우들과 어울리고 운동도 하면서 잘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이제는 사회적 여건이 자녀가 노인을 보살필 수 없는 시대이다. 암이 생기거나 기저질환이 악화되면 어느 병원으로 가겠다든지 하는 나의 구체적인 계획표를 자녀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좋다. 경제적 플랜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종종 자녀들 주머니 사정 때문에 싼 요양병원을 찾아 이곳, 저곳을 전전하는 노인들이 있는데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될 수 있으면 병이 깊지 않을 때 자녀들에게 맡기지 말고 본인이 직접 몇 군데 요양병원을 하루 이틀 체험해 보고 구하는 것이 좋다. 


팔십몇 살 되는 기대수명은 별 의미가 없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건강나이를 오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도 규칙적으로 하고 식사도 잘 챙겨 먹고 친구관계도 잘 유지해야 한다. 병이 나서 보살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나는 돈이 이것밖에 없으니 너희들이 나머지 병원비를 부담해 주면 좋겠다고 자녀들에게 당당히 요구해야 한다. 그런 권리는 자녀를 양육한 부모의 당연한 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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