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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44) 양자(養子)
  • 편집국
  • 등록 2023-02-22 14:4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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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할아버지는 88세로 난청이 있고 치매증세가 있어 아들과 며느리도 종종 못 알아본다. 오래전 무릎 수술 후 한쪽 다리가 조금 짧아져 절뚝이지만 걷는 데는 큰 지장이 없다. 며느리가 돈을 가져갔다며 의심을 하고 있다. 50대 후반의 아들이 부친을 요양병원에 모시고 왔다. 부친을 대기실에 모셔다 놓고 아들이 의사와 상담을 하였다. 


“선생님, 사실은 제가 사업을 하다 부도를 맞아 제집과 아버지 집까지 압류당하여 아버지가 갈 곳이 없습니다. 제가 다시 재기하여 아버지 살 곳을 마련할 때까지 이곳에서 치매도 치료하면서 입원시켜주십시오.” 


아들이 양자인데 제조업을 운영하다 코로나 사태로 경영이 악화되면서 공장과 집까지 모두 압류가 된 것이다.  


“의지할 곳 없는 그놈을 내가 받아 양아들로 삼았는데 이놈이 나를 이런 식으로 속이다니….”


박 할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을 이런 곳에 입원시켰다고  화를 내었다. 하지만 이 엄동설한에 집도 없는데 어디로 갈 것인가? 매달 나오는 노령연금과 평소 저금한 것이 있어 그것으로 병원비를 감당하고 있다. 환자의 배우자가 10년 전 본원에서 요양하다 돌아가셔서 이곳으로 모시고 온 것이다. 환자는 양아들에게 적잖은 재산 관리를 맡겼다고 한다. 



필자가 어릴 때만 해도 농촌에서는 대를 잇는 것이 아주 중요한 문제여서 아들이 없는 집에서는 흔히 조카나 친척 중에서 양자를 받아들여 가계를 이어갔다. 나도 양자로 갈 기회가 있었다. 우리 집은 7남매에 아들이 다섯으로 내가 막내였다. 숙부님은 자녀가 딸 하나뿐이었다.


숙부님 댁에서 우리 집에 아들 하나를 달라고 요청했다. 아버지는 순순히 아들 하나를 주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쉽게 주려고 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큰 아들은 우리 집 가계를 이어야 해서 주지 못하고 둘째는 우리 집에서 제일 똑똑하여 주지 못했다. 셋째 형은 숙부님의 딸과 동갑인 관계로 본인이 한사코 가기를 거부했다. 넷째 형을 주려고 하니 숙부님 댁에서 거부하고 나를 달라고 하였다. 


중학교 1학년 때인가 하루는 어머니가 나를 불러 물었다. 


“작은 집에서 너를 양자로 달라고 하는데 넌 가고 싶으냐?” 


당시 우리집은 시골에 살았는데 가난했고 7남매나 되어 먹을 것도 변변찮아 식사때만 되면 전쟁을 치르듯이 서로 다투었다.  나는 막내이다 보니 항상 먹는 것에  불리했다. 수박을 잘라놓으면 내가 한 조각 먹을 때 형들은 벌써 세 조각이나 먹고 있었고 가끔 포도를 사 오면 형들이 마구잡이로 포도송이를 씨도 뱉지 않고 삼키는 바람에 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에게 포도의 양을 똑같이 나누어 달라고 말했지만 형들은 쪼그만 녀석이 어찌 형들과 꼭 같이 먹을 수 있느냐며 나무랐다. 

간혹 떡이 들어오면 형들은 무서운 속도로 먹었고, 어떤 형은 떡에 침을 뱉기도 했다. 비위 약한 인간은 먹지 말고 나가떨어지라는 의미였다.   


숙부님 댁은 진주 시내에 있었는데 훌륭한 양옥집에 집안에 전축도 있었고 롤케이크도 먹을 수 있었고 은빛으로 빛나는 포크와 나이프도 있었다. 무엇보다 식사시간에 형들이 빼앗아 먹을까 걱정하지 않고 맛을 즐기면서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숙부님 댁에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쁜 표정이 얼굴에 환히 드러났다.


“엄마, 가겠어요.” 


하고 말하니 어머니가 갑자기 화를 벌컥 내며 나의 뺨을 후려쳤다. 


“이놈아,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말이 나오느냐?”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어머니가 내심 요구한 정답은 ‘우리 집이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어머니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였던 것 같다.


어머니는 결국 나를 양자로 주지 않았다. 아들이 다섯이나 되는데 왜 하나를 주지 않았던 것일까? 


요양병원에 근무하다 보면  아들 되는 보호자가 양자인 경우를 가끔씩 본다. 낳아서 길러준 아들보다 더 성심껏 양부모님을 모시는 경우가 많이 있다. 조금 소홀하면 친아들이 아닌 양아들이라서 내게 이렇게 섭섭하게 대하나 하고 노여워하는 부모도 있다. 내가 여태 본 양자들은 책임감이 강하고 양자로 왔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마음에 최선을 다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노인들은 한 사람 한 사람 제각기 살아온 과정과 역사가 다르다. 그래서 집안의 사정과 자녀들과의 관계 등 여러 사정을 감안하여 노인들이 상처받지 않게 이해하고 다독거려주고 섭섭함을 치료해 주는 역할까지 해야 하는 것이 노인 케어의 중요한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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