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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의 재피방 - 회 ② 동아시아의 회 문화
  • 편집국
  • 등록 2024-01-11 16:5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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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피방은 ‘조그마한 방’이란 뜻의 순우리말로 국악인 김준호, 손심심 부부가 운영하는 블로그 내용이다.

사진_아이클릭아트


일본은 서구인들이 가지고 있던 ‘회는 미개한 문화’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사시미와 스시’를 세계적인 식문화로 정착시켰다. 그래서 회(膾)의 영어도 ‘raw fish dish’보다는 주로 ‘Sashimi’를 쓴다. 


섬나라인 일본이 사시미를 고대부터 먹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이 육식을 시작한 것은 근대에 들어서였다. 


본격적인 사시미 문화는 14세기 일본의 무신정권 시대인 가마쿠라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사시미’라는 말도 1399년 최초로 등장했다. 원래는 우리의 회 같이 어부들이 바다에서 바로 잡은 생선을 잘게 썰어서 식초에 찍어 먹는 어부들의 즉석요리인 ‘나마스(膾)’에서 시작하였다. 사시미(刺身)는 ‘사스+ 미’의 합성어이다. ‘사스’는 ‘찌르다’라는 의미이고 ‘미’는 생선 살을 의미한다. 


15세기 무로마치 시대에 들어 간장이 정착되면서 식초와 소금으로 찍어 먹던 문화를 제치고 ‘와사비와 간장’이라는 사시미의 소스가 새롭게 등장했다. 그리고 16세기 이후, 에도 시대부터 사시미 문화가 일반화되어 일본 요리를 대표하는 중심이 되었고, 스시와 함께 세계적인 음식으로 발전하였다. 


우리나라 회의 역사는 약 7,000~8,000년 전에 그렸다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그 흔적이 있다. 맨 아랫부분을 보면 고래를 해체하는 장면에 있다. 고래를 부위별로 해체하는데 쓰이는 칼은 흑요석으로 만든 돌칼이었을 것이다. 일단 해체한 고기는 화식을 하기 전에 틀림없이 회를 썰어 먹었을 것이다. 그 흔적은 우리와 문화 원형이 유사한 시베리아와 북극 일대의 여러 소수 민족의 식습관에 남이 있다. 그들은 지금도 고래를 잡자마자 고기를 날것으로 먹는 것을 당연시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울산지역은 고래잡이의 후손답게 요즘도 갓 잡은 고래 고기를 썰어 장이나 소금에 바로 찍어 먹는 ‘막찍기’ 문화가 살아있는 것만 보아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신석기 유적으로 남아 있는 패총(貝塚, midden)에도 회의 흔적이 있다. 흔히 조개무지, 조개무덤이라고도 하는데,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 일본, 한국 등지에서 발견되었다. 우리는 수천 년 전의 선조들이 먹던 습관 그대로 ‘굴회, 전복회, 백합회, 소라회, 가리비회, 맛조개회’ 등을 지금도 생으로 즐기는 화석 같은 유전원형질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 황실 지리학회 탐사대 바츨라프 세로셰프스키가 1903년에 대한제국을 방문하고 쓴 ‘코레야 1903년 가을’이라는 기행문에는 당시 한국인의 별난 회 먹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조선인은 생선회를 좋아하여 맵고 자극적인 소스와 함께 먹고 날고기, 비계, 내장도 잘 먹으며 작은 뼈, 연골도 씹어 먹는다.”

한민족은 예부터 신선한 것이면 생선과 고기를 따지지 않고 잘 먹었던 것이다.



/ 김준호(국악인 · 방송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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