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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산 마고당·천제단 고찰 ] 천제단 입석
  • 편집국
  • 등록 2023-12-22 13: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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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산 천제단이 세워진 시기와 3개 입석의 정체
장산 천제단은 상산마고당에서 조금 떨어진 서북쪽 능선 위에 있다. 제단 위에는 3개의 입석이 나란히 서 있는데 폭풍이 몰아쳐도 넘어지지 않게 바위 바닥을 가공한 흔적이 보인다.

장산 천제단 3개의 입석


◇ 장산 천제단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동하면고문서>에서조차 천제단에 대한 언급은 없다. 특이한 점은 제단 위에 3개의 입석이 나란히 서 있는 점이다. 3개의 입석에 대해 대다수 장산 천제단 관련 자료엔 천·지·인(天·地·人)을 나타낸다고 한다. 더구나 천제단 안내판엔 천신, 지신, 산신을 나타낸다고까지 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천제단이면 이미 하늘에 제를 올리는 곳인데 굳이 천·지·인을 나타내는 상징물이 필요치 않다. 천·지·인을 비록 3개로 나눴지만 원래 하나기 때문이다. 전국에 걸쳐있는 천제단 형태에서도 주변에 이 같은 상징물은 찾기 힘들다. 단지 태백산 천제단 북쪽에 위치한 장군단의 제단 위에 입석이 3개 서 있을 뿐이다. 


태백산 장군단과 천왕단은 근대에 들어 대종교의 영향을 받아 단군숭배사상과 결부되어 있다. 천왕단 주변 건물 안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던 불상이 사라지고 현재는 한배검(단군의 높임말)이란 비석만 자리 잡고 있는 경우를 봐서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장군단의 3개 입석은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의 기본인 환인, 환웅, 단군의 상징으로 볼 수 있고 실제 그렇게 여기고 있다. 


반면 장산의 천제단은 만든 시기조차 불명확하다. 그나마 마고할미를 천신으로 모시던 시기엔 천제단이 만들어지기 힘들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그러다 불교가 숭상되면서는 부처와 동격 시 되기도 했을 것이다. 


조선 후기 문인 화가 이인상(1710~1760)의 <유태백산기(遊太白山記)>에 따르면 당시 태백산 정상 천왕당에는 건물이 몇 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서쪽 법당에는 석불이 있고, 동쪽 법당에는 나무 인형들이 있으니, 이른바 천왕(天王 : 하늘의 임금 혹은 환웅)이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곧 유교 세력에 의해 천제단 주변의 당이 허물어지고 천제단마저 무너지게 되었다. 


그 후 1860년 하늘을 모시는 동학과 고종의 원구단에서의 천제(1897년), 그리고 1909년 한얼님을 섬기는  대종교의 창시가 기폭제가 되어 전국적으로 천제 바람이 불었다. 장산의 천제단 역시 이 시기에 천제 의식의 흐름을 타 지은 것으로 보인다. 


◇ 장산 천제단 입석의 정체


역사적으로 볼 때 장산의 천제단은 좌·중·우동 3개 마을이 모여 건립했다. 만일 장산 천제단이 태백산 천제단과 같이 단군을 모시는 대종교와 별 관련이 없다면 천제단에 상징물로 세울 것은 무엇일까? 


천제단을 만들고 제를 지내는 3개 마을을 나타내는 상징물 외에 생각하기 힘들다. 따라서 3개 동의 마을 주민들은 천제단에 좌·중·우동의 상징물로 입석을 세워 하늘에 안녕을 비는 것부터 시작했다고 보여진다.


/ 예성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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