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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 이산표석을 바로세우다> ②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산표석을 세웠나?
  • 편집국
  • 등록 2023-08-22 12:41:14
  • 수정 2024-01-15 17: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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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600여 차례에 달하는 발걸음으로 165기가 넘는 이산표석을 찾아내니 이산표석의 역사적 사실에 오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잠자던 이산표석이 하나씩 깨어날수록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이산표석은 화강암으로 만든 표석이다. 화강암을 깎아 추정 총수량 200여 개에 달하는 이산표석을 만든다는 일은 큰 작업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이 아닌 다른 기관이나 개인이 인근 주민들의 노역이나 부역을 동원하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설사 이산표석을 만들었다 해도 일본과 토지분쟁 중이라면 그 많은 이산표석을 산속으로 옮겨 심는 작업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토지분쟁 당시 이산표석을 심은 게 아니고 이전부터 존재한 것은 아닐까? 조선 후기에 목재로 만든 이산표석이 훼손이 심해 석재로 교체했다고 가정할 수는 있겠지만 왕조시대에 좌수영이란 군대에서 왕의 소유를 무엄하게 ‘이산’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국가의 소유임을 알리려면 ‘이씨왕조의 산’이란 뜻의 ‘이산’이 아닌 다른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이산’ 즉 ‘이왕산’이란 표식은 이미 왕조시대가 끝났음을 알리는 또 다른 표식인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임야를 몰수당하자 창덕궁에서 이산표석을 세워 소유권을 주장했다고 한다. 그럼 표석이 이전에 없었던 사실임이 분명하고 창덕궁이 주체인지라 이산이란 표식도 납득이 간다. 조선은 왕조국가라 나라의 소유는 곧 왕의 소유가 된다. 그래서 이산표석이 왕의 소유가 아니라 창덕궁의 소유가 되어야 사유재산이 되어 일제로부터 임야의 소유권을 되찾아 올 수 있었을 것이다. 굳이 왕의 소유가 아니라 창덕궁의 소유임을 밝힌 이산표석이라 가정하면 의문점은 이산표석을 세운 주체와 일본의 감시망을 피한 점이다. 



소나무 앞 이산표석 (사진 : 박용구 조류탐조가)


만일 창덕궁이 주체라면 당시 창덕궁의 지위와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과연 그럴 능력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이미 1908년 경 황실 재산 대부분을 국유화한 터라 창덕궁의 재산이 별도로 존재할 수가 없었고 남아 있다면 곧 조선총독부의 재산이 되었다. 

그리고 1910년 12월 30일에 발표된 ‘황실령(皇室令) 제34호’에 의해 이왕직이 설치됨에 따라 기존의 궁내부 업무는 자연히 이왕직으로 이관되었다. 이왕직은 궁내부의 업무와 기능을 접수하여 이왕가의 인적 사항·재산·제사·도서·동물원·식물원·박물관 등 일체의 업무를 관장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 황실이 망국과 동시에 이왕가로 격하됨에 따라 이왕직의 조직이나 기능은 옛 궁내부에 비해 현격하게 축소되었다. 


 

• 이산표석, 과연 조선왕실이 세웠나?

 

이왕직 관원의 임명·상벌 등은 일본 궁내성 대신의 소관으로, 동시에 조선총독의 감시를 받았다. 따라서 이왕직은 일본 천황-궁내성-이왕직의 계통을 갖는 행정조직이어서 이왕가에 관한 일체의 사항은 이왕직을 통해 궁내부에 보고되고 궁극적으로는 일본 천황의 통솔을 받았다. 

1907년 ‘헤이그밀사사건’을 기화로 고종을 퇴위시키고 군대 해산, 사법권 이양 등 식민지화를 진전시킨 일본은 1909년 7월 한국을 완전한 식민지로 삼기 위한 정책을 확정하고 필요한 조치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이어 1910년 6월에는 한국에 대한 강제병합과 이후 식민지 지배의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였다. 과연 이런 시기에 창덕궁이 나서서 이산표석을 세우는 일은 기능하리라고 말하기 어렵다. 

 

의문은 또 있다. 

1910년부터 왕실의 재산은 이왕직 장관이 담당하고 있었는데 일본으로부터 되찾은 장산 일원의 임야 대부분이 ‘이왕직’이 아닌 ‘창덕궁’으로 등기되어 있는 점이다. 장산 일원을 되찾아 온 시기가 1924년이라면 이왕직 장관 명의가 되어야 함에도 1927년에야 이왕직 장관으로 이전되어 있다.  이는 재판을 통해 소유자를 다툰 경우가 아니라 일본의 왕실 재산 관리상 창덕궁으로 등기했다 다시 이왕직 장관으로 한 것이라 추측된다. 


/ 예성탁 발행·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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