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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국 속으로> ⑥ 장산국과 우시산국
  • 편집국
  • 등록 2023-07-25 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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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산국 이전부터 우시산국이 있었다

연산동 고분군 (사진출처 : 연제구청)


울산 가는 길목인 양산 서창동에 우불산이 있다. 서창에서 회야강을 건너 바라다보이는 나지막한 산이 우불산으로 영남 최고의 명산으로 역사 기록에 등장한다.


조선 초기 펴낸 동국여지승람 한성 부조에 고려와 조선 왕실이 주관해 제사를 지낸 명산은 두 곳으로 나오는데, 그중 첫째가 울산 우불산이며 두 번째가 문경 주흘산이라고 한다.


우불산 기슭에는 우불신사가 있다. 웅상읍 주민들이 가을에 향사하는 우불신사는 삼한시대 이래로 지역주민들이 모셔온 제단인데, 특이하게도 미나리며 배추, 무 등 자연 그대로의 채소를 단에 올리고 절을 하는 신사다.


우불신사는 일찍이 신라 소사로 모셔졌고 이후 고려, 조선 시대를 거쳐 오면서 최고의 신사로 모셔왔는데 역사적 기록은 다음과 같다.

 

‘아득한 옛날 고대 북부 부족(고조선 유민으로 추정)이 남쪽으로 내려올 때, 한 부족은 서라벌에 정착해 신라가 되었고 다른 부족은 우불산 아래에 정착해 우불국이 되었다가 후일 우시산국이 되었다. 이 시기 거칠산국도 생겨났을 것으로 가정해 본다. 한때 신라와 패권을 다툰 우시산국은 신라에 병합되었다. 그러나 그 신사는 남았으니 서창의 우불신사인 것이다. ’

[일광(一光)의 행복세상 참조]

 

그런 반면 우불국의 흔적으로 신불산이 있다. 신불산의 과거 이름은 우불신산이었는데 우불국이 없어지면서 신불산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런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우불국과 우시산국은 장산국과 많은 차이를 보인다. 장산국이 가야에서 파생된 국가라면 우시산국은 신라와 더불어 북방민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아마 이 시기 거칠산국도 생겨났을 것이다. 따라서 가야가 건국되기 이전부터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은 존재한 것으로 보여 가야와 장산국보다 더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우시(尸)산국에서 현재 울산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한글이 창제되기 전에 고대 향찰식 표기에서 尸는 ‘ㄹ’ 받침으로 쓰였으므로 고대에 이미 울산/울뫼 등으로 불렸으리라 추정할 수 있다. 


일부에선 장산 지명도 상산으로 불렸다며 그 유례를 우시산국에서 尸를 ‘ㅅ’으로도 봐 ‘웃뫼’, ‘웃산’의 의미로 상산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역사상 장산은 과거부터 우시산국과는 상관없이 상산과 장산이 혼재해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결국 장산으로 귀착된 것으로 보인다. 장산마을 안내판 등에서도 우시산국과 장산을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는 잘못이라 생각된다. 


기록에 따르면 신라가 우시산국과 장산국을 동시에 공격하여 복속시킨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아마 장산국이 아닌 거칠산국이라 여겨진다.


거칠산국 병합과 장산국의 병합은 시차를 두고 벌어진 일이다. 신라 탈해왕(서기 57년~80년) 당시 양산지역 황산진으로 진출한 신라와 국경을 마주했던 것은 거칠산국과 우시산국이었다. 최소한 탈해왕 이후 건국된 것으로 보이는 장산국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거칠산국의 병합은 양산 황산진을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 벌어진 일로써 황산진 일대를 가야로부터 뺏은 신라가 거칠산국의 동래지역과 우시산국을 복속시켰다. 그러다 다시 황산진 일대를 가야가 되찾자 거칠산국의 유민들은 후일 생겨난 장산국과 융화되었다. 


그 결과 신라의 입장에서 볼 때 당시 동래지역을 거점으로 한 국가를 거칠산국, 내산국, 장산국 등의 이름으로 혼재해 부르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예성탁 / 발행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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