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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국 속으로> ② 장산국은 금관가야로부터
  • 편집국
  • 등록 2023-07-20 17: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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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국은 김해 금관가야에서 온 귀족집단에 의해 건국되었다고 여겨진다. 비록 아직까지 학설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여러 곳에 등장한다.

장산 돌탑


◇ 전해오는 장산국 신화
옛날 고씨(高氏)들이 장산 기슭에 있는 장자벌에서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늘에서 선인이 내려와 처녀 고선옥(高仙玉)의 아름다움에 반해 결혼하고 아들딸 각각 10명을 낳았다. 그 아이들은 장성하여 저마다 안(安)씨, 정(鄭)씨, 박(朴)씨, 이(李)씨, 김(金)씨, 최(崔)씨 등 성씨를 만들어 마을을 다스렸고, 선인은 마을에 토성을 쌓아 그 씨족들을 다스리는 대족장이 되었다. 회혼(回婚)을 맞은 선인이 옥황상제의 부름을 받고 하늘로 올라가자 고선옥은 고씨족을 다스리는 고씨 할매가 되어 날마다 옥황상제께 선인의 하강을 빌었지만 만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다. 20곳의 마을에 있던 아들딸들은 고씨 할매가 선인을 기다리다 죽은 바위를 다듬어 상여를 만들고 상여 바위 정상에 큰 묘를 만들어 안장하였는데, 지금도 묘를 비롯해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마을 사람들은 고씨 할매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고 제사를 모셔 오고 있다.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첫 번째, 건국신화부터 닮았다. 

금관가야 건국신화는 하늘에서 내려온 구지봉의 여섯 개 알에서 출발한다. 알에서 깨어나 비 온 뒤 죽순보다 더 빠르게 성장한 6명의 청년들은 각지로 흩어져 저마다의 가야왕국을 건설한다. 장산국 역시 하늘에서 내려온 선인으로 시작한다. 그의 2세들도 근처 마을로 흩어져 각기 씨족장이 된다. 

 

두 번째, 성(性) 씨의 시조가 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김수로왕과 허황옥 사이에서 10남 2녀가 탄생한다. 이들 중 두 명의 형제는 허황옥의 성을 물려받아 허 씨의 시조가 되고 수로왕은 김해 김씨의 시조가 된다. 장산국은 선인과 위대한 선인의 여자(고선옥) 사이에서 10명의 아들과 10명의 딸들이 저마다 안(安) 씨, 정(鄭) 씨, 박(朴) 씨, 이(李) 씨, 김(金) 씨, 최(崔) 씨 등 성 씨의 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세 번째,  두 국가 모두 공교롭게도 아들이 10명이다. 

차이점은 허황옥은 딸이 2명인 데 비해 장산국은 딸마저도 10명이다. 여기서 10이란 숫자가 내포하는 또 다른 의미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네 번째, 남녀평등사상과 더불어 여권신장이다. 

금관가야의 허황옥은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아들 2명에게 자신의 성인 허 씨 성을 이어받게 했다. 우리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파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장산국은 먼저 고선옥(위대한 선인의 여인)이 선인이 사라지자 그 지위를 이어받아 부족을 통치한 것으로 전해진다. 부족장을 대신해 직계 아들이 아닌 부인이 통치한 경우 역시 유례를 찾기 힘들다. 두 여인 모두 우리 역사에서 여권신장에 최고로 기여한 인물로 볼 수 있다.  장산국 10명의 딸들도 아들과 동등하게 성씨의 시조가 되는 지위를 누렸다. 또한 여성이 부족장의 지위를 이어받은 데에는 고대국가 건국에서는 보기 힘든 남녀평등사상이 깔려 있다.


다섯 번째, 종교에서는 불교가 양국의 공통 국교로 보인다. 

가야에는 허황옥이 전한 불교가 널리 퍼졌으며, 장산국의 경우 선인이 건국한 ‘장산국’이란 나라 이름과 장산의 ‘장지봉’ 그리고 ‘장지마을’ 등의 이름에서 불교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장지’란 ‘큰 가르침을 전하다’는 뜻으로 ‘불교의 전파’라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여섯 번째, 국가체계도 비슷한 형태로 보인다. 

가야 건국신화에서 가야는 6명이 건설한 왕국으로 연맹체는 아니지만 서로 느슨하게 연합한 국가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장산국도 선인의 자손들이 널리 퍼져 구성된 씨족들의 연합체로 여겨진다. 즉, 가야의 경우 강력한 중앙집중식 국가도 아니며 그렇다고 연맹체도 아닌 각 국가별로 독립적인 정치형태를 지녔다. 가야국끼리 큰 전쟁이 발생하지 않음과 동시에 가야국 연합체 내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국가가 가야국을 대표한 것으로 보인다. 장산국 역시 기장의 ‘아기장수 전설’에서 보이듯 지역에 따라 서로 독자적으로 군사를 모으고 유지한 것을 볼 수 있다. 

 

일곱 번째, 강성한 국가가 연합체를 대표했다. 

부족연맹체에서 국가로의 발전과정을 보인 가야국과 유사하게 장산국에서도 씨족이 점차 부족연맹체나 부족국가로 발전한 곳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가야국의 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고령가야, 성산가야, 아라가야 등과 같이 장산국의 이웃 부족국가는 지역에 따라 따로 이름을 가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장산국과 거칠산국 그리고 내산국까지 서로 연관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이들 국가가 처음부터 장산국과 상관없이 다른 국명을 가졌을 수도 있다. 아니면 장산국에서 출발했지만 지역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존재했었고 또 어느 지역 부족이 번성할수록 그 부족국가 이름이 장산국을 넘어 부산지역을 대표했을 것이라 추측해 본다. 이는 마치 금관가야가 전기 가야의 대표였고 후기엔 대가야가 가야를 대표했음과 유사할 것이다. 

 

낙동강을 기점으로 서쪽의 가야와 동쪽 부산지역의 장산국은 이렇듯 뿌리가 같아 보인다. 그래서 상호우호적이었고 특히 허황옥 왕비 및 불교와 연결된 금관가야와는 더 긴밀했을 것으로 보인다.

 

/ 예성탁 발행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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