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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갱노회의 삶에 성공한 사람들
  • 편집국
  • 등록 2024-04-24 11: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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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준호의 재피방 - 회 ⑧


은어(銀魚)


서남쪽 지방에선 나지 않으니(不是西南物) 

동북쪽 지방에서 가져왔구나(輸來北東方) 

쟁반에 수북이 은빛 회가 쌓였고(高盤銀色動) 

도마에는 백설 같이 빛난다(登姐雪輝揚) 

말려서 화로에 구우면 별미로다(乾衆爐中味) 

진하게 간장에 졸이면 향기롭지(濃煎醬裏香) 

가난한 선비가 먹기 좋지만(宜饌藜藿子) 

고량진미 먹는 이도 실컷 먹긴 어려워라(難盡厭膏粱) 


- 이응희(李應禧, 1579~1651) / 옥담시집(玉潭詩集)


옥담 이응희는 왕실의 종친이었다. 광해군 때 대과에 합격했지만, 벼슬에 나가지 않고 경기도 산본 수리산 근처에서 선비로 살면서 서민들의 삶을 많은 시문으로 남겼다. 그는 향촌의 음양오행, 풍경, 풍속, 놀이, 생활, 주거, 의류, 도구, 문방, 화초, 수목, 식물, 곡물, 과일, 동물, 벌레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백과사전식으로 시로 남겼다.


이옥(李鈺, 1760∼1815)은 성균관 유생 시절부터 기존의 틀에 박힌 문체에 반하여 소설체로 글을 쓰다가, 정조와 사사건건 대립하여 4개월간 징계를 받고 합천 삼가 현으로 강제 군 복무를 다녀온 독특한 고집쟁이였다. 그는 일찍이 벼슬을 포기하고 고향 경기도 화성으로 낙향하여 직접 농사를 지으며 시문과 학문, 저술 활동을 왕성하게 하였다. 


그가 남긴 저술은 모두 오늘날의 신문같이 상세하고 구체적이라, 조선 후기의 농촌 생활과 풍속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가 집필한 ‘백운필(白雲筆)’에는 서해안의 ‘밴댕이회’를 먹는 방법이 따라 해 보고 싶을 만큼 실감 나게 묘사되어 있다.


 “큰 상추를 골라 두 장을 뒤집어 손바닥에 펴놓는다. 숟가락으로 흰밥을 거위알처럼 둥글게 만들어 상추 위에 올려놓고 윗부분을 조금 평평하게 만든다. 젓가락으로 밴댕이회를 집어 겨자장에 담갔다가 밥 위에 얹는다. 여기에 적당량의 미나리와 시금치를 올린다. 다시 그 위에 가는 파와 향이 나는 갓 서너 줄기를 살짝 눌러 얹는다. 마지막으로 갓 볶아낸 고추장을 조금 바른다. 그리고 상추의 잎 양쪽을 말아 연밥처럼 둥글게 단단히 오므려서 입에 넣는다. ”


사실 이옥이 먹는 방식은 양반 사대부가 먹는 방식이 아니라, 바닷가 서민들이 먹는 식사법이었다. 사대부들이 가장 이상적으로 먹는 회의 식사법은 ‘금제작회(金虀斫膾)’라고 따로 존재했다. 사대부가 꿈에서라도 먹고 싶은 최상의 금제작회는 서리 내린 직후, 가을에 잡힌 석 자 미만의 농어로 백옥같이 회를 뜬 뒤에, 귤껍질을 잘게 썰어 겨자장에 찍어 먹는 회를 말했다. 수나라 양제가 즐긴 이후에 여러 문헌에 나오는, 그냥 고급 회를 지칭하는 별칭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귤을 함부로 구할 수 없어서, 같은 색인 황국잎이나 생강을 썰어 넣기도 했다. 


백성들이 먹는 방식은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간장, 식초, 겨자로 만든 겨자장이나, 된장, 생강, 파, 여뀌를 썰어 섞은 양념장에 찍어 먹거나 얹어 먹었다. 그리고 취향에 따라 강황, 고추, 고추장이 추가되기도 했다.


 아무리 진상품으로 산해진미를 다 먹었던 조선의 국왕도 함부로 먹을 수 없었던 것이 생선회였다. 냉장 시설이 없었던 옛 시절에는 건어물이 아닌 이상, 상하기 쉬운 생선을 한양까지 운반하는 것 자체가 제약이 따랐다.


바닷가나 강가에서 갓 잡아 올린 회를 양념장에 찍어, 상추를 넓게 펴서 각종 고명을 얹어 쌈을 싸 먹을 수 있다면, 나라님도 부럽지 않은 진정한 순갱노회의 삶이 아닐런지.



국악인 · 방송인 김준호 ·  손심심 

덧붙이는 글

재피방은 ‘조그마한 방’이란 뜻의 순우리말로 국악인 김준호, 손심심 부부가 운영하는 블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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