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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호의 재피방 ] 회 7. 농어회와 안빈낙도
  • 편집국
  • 등록 2024-04-11 11:4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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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김준호의 재피방 ] - 회 ⑦

회 7. 농어회와 안빈낙도 

 

유교 국가인 조선이 들어서며 회는 불교의 ‘불살생(不殺生)’의 원리에서 자유로워지며 급속도로 확산하였다. 게다가 그들이 가장 닮고 싶어하는 공자의 ‘회불염세(膾不厭細, 공자는 회는 잘게 썬 것을 싫어하지 않으셨다)’와 장한의 ‘순갱노회(蓴羹鱸膾)’로 인해 회는 사대부의 은퇴 후의 화두로 변했다. 따라서 회는 궁중에서 민간까지 민물고기, 바닷고기, 소, 꿩, 닭 상관없이 모두 즐기는 취식 방식이 되었다. 


심지어 궁중에서는 연회나 잔치상에도 계절에 따라 한강 하류에서 잡힌 숭어, 농어, 웅어, 밴댕이가 회로 올라왔다. 싱싱한 웅어나 밴댕이 회를 수라상에 올리기 위해 식품 재료를 총괄하는 사옹원(司饔院)에 생선 담당 부서를 따로 두기도 했다. 웅어를 잡아 올리는 ‘위어소(葦魚所)’를 행주산성 부근에 두었고, 안산에는 밴댕이를 잡는 ‘소어소(蘇魚所)’를 두어 봄철에 횟감을 얼음을 이용하여 궁궐까지 직송하게 하였다.


조선의 군왕들은 이렇게 잡은 귀한 웅어를 신하들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인조는 왕자들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윤선도에게 고마움의 선물로 웅어 일곱 두름을 하사했다. 또 정조는 같이 활을 쏜 군관 오의상에게 조기 한 마리와 웅어 스무 마리를 하사했고, 실학자 이덕무도 봄에 정조로부터 네 차례에 걸쳐 웅어 여섯 두름을 하사받았다. 


행주(幸州)는 궁중에서 먹는 웅어를 잡는 위어소(葦漁所)가 있는 곳으로, 겸재 정선(鄭歚, 1676~ 1759)은 ‘행호관어(杏湖觀漁)’라는 산수화에서 행주산성 부근에서 진상용 웅어를 잡는 어부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겸재의 친구인 이병연(李秉淵, 1671∼1751)은 행호관어 그림에 쓴 글에서 그 광경을 이렇게 읊고 있다. “늦봄엔 복어국(春晚河豚羹) 초여름엔 웅어회(夏初葦魚膾) 복사꽃 필적 물결이 불어(桃花作漲來) 행호 밖으로 그물을 던지네(網逸杏湖外)” 한편 겸재 정선은 버드나무 가지에 웅어를 엮어 척재 김보택(金普澤, 1672∼1717)에게 선물을 보내는 광경도 ‘척재가 시를 짓다(惕齋題詩)’라는 화첩에 그려 넣고 있다. 


조선의 사대부들도 출세에 얽매이지 않고, 영화로움 대신에 조용하고 편안한 삶을 즐기는 공자의 ‘잘게 썬 회’와 장한의 ‘농어회’를 끊임없이 갈구했다. 조선 초기의 학자 권근(權近, 1352∼1409)은 그의 수필 ‘어촌기(漁村記)’에서 “구운 고기와 신선한 생선회로 술잔을 들고 서로 권한다(炰肥膾鮮 擧酒相酬)”라고 하며 어촌과 생선회를 그리워했다. 그리고 그의 외손자이자 동문선(東文選)의 저자인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은 공자와 같이 붕어회(鱠鯽)를 채를 썰 듯 가늘게 썰어 먹는 것을 좋아했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문장가인 허균(許筠, 1569~1618)은 푸줏간 앞만 지나가도 고기 씹는 흉내를 낼 정도로 대단한 미식가였다. “실처럼 잘게 회를 쳤더니, 군침이 흐르더라”라고 할 정도로 생선회도 무척 좋아하였다. 그가 쓴 음식 백과서 ‘도문대작(屠門大嚼, 1611년)’에서는 49여 종의 해산물을 소개하며, 그 재료에 대해 냉정하고 솔직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 “숭어는 서해 어디에나 있지만, 한강에서 잡히는 게 가장 좋다. 나주에서 잡히는 숭어는 대단히 크고, 평양에서 잡아 얼린 것이 아주 맛있다. 은어는 영남에서 나는 것은 크고 강원도에서 나는 것은 작다. 강의 폭이 좁고 길이가 짧은 강원도의 은어는 먹이 경쟁이 심해 성장이 더디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조선 중기 한문학의 대가였고 효종의 장인이었던 계곡 장유(張維, 1588∼1638), 삼정승을 두루 지냈던 상촌 신흠(申欽, 1566~1628) 등의 여러 시문집에서 농어회와 전원생활을 그리워하고 있다. 


회를 좋아하기는 조선 후기 실학자도 마찬가지였다. 남한강변 출신의 정약용(丁若鏞, 1762~ 1836)은 “생선회 생각 간절하네(思切銀絲)”라며 민물회, 바닷고기 따지지 않고 좋아했고, 요리에 각별한 재주가 있었던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특별하게 은어회를 즐겼다. 서유구(徐有榘, 1764~1845)는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에서 조선 시대의 회의 종류와 그 먹는 방법에 대해 확실하게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그 취식 방법이 오늘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회를 쳐서 먹기에는 숭어, 준치, 쏘가리, 농어, 눌어, 은어, 밴댕이가 좋다. 껍질과 뼈를 제거하고 흰 생선 살만 취해 얇게 저민 후에 흰 종이 위에 펴서 잠깐 말렸다가 잘 드는 칼로 곱게 채 썰어 사기 접시에 얇게 펴 놓는다. 그리고 파와 생강을 가늘게 채 썰어서 회 위에 뿌린 후 겨자장에 찍어 먹는다. 그러나 단오가 지나서 회를 먹을 때는 각별하게 주의해야 한다.”사대부 대부분이 농어회와 안빈낙도를 꿈꾸지만, 그냥 희망일 뿐이었다. 그 꿈을 현실적으로 이룬 사람은 얼마 되지 않았다.


국악인 · 방송인 김준호 ·  손심심 


덧붙이는 글

재피방은 ‘조그마한 방’이란 뜻의 순우리말로 국악인 김준호, 손심심 부부가 운영하는 블로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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