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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기고 ] ‘간비오산’과 그 의미
  • 박일 작가
  • 등록 2024-03-27 14: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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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비오산 봉수대' 기사를 읽고
  • 박일 / 제65회 부산광역시 문화상(문학부문) 수상작가
해운대라이프 590호(24.3.13)에 ‘간비오산 봉수대’라는 주제에 ‘봉수대라고 하기엔 미흡한 복원 구조’라는 부제의 기사가 실렸다. 주요 내용은 ‘봉수대 위 연통이 안내판과 문헌에 5개로 기술된 것과 달리 현재 간비오산 봉수대는 연통이 하나뿐이라 1기만 올릴 수 있는 구조다’라고 봉수대의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아무리 봐도 봉수대라고 보기 힘든 현재의 구조보다 최소한 아이들의 체험공간이 될 수 있게 봉수대로 인식할 수 있는 구성이 필요해 보인다’고 제안했다.



간비오산 봉수대


장산(634m)은 해운대의 주산이다. <동국여지승람>은 ‘상산(上山)’이라 하여 ‘동래현에서 15리 떨어져 있으며 대마도가 가장 가깝다’고 기록하고 있고, 간비오산은 상산 남봉이라고 했다. <동래부지>에는 ‘장산’ 또는 ‘봉래산’이라고 했고, 산 위에 평지가 있으며 장산국기(    山國基)라는 말이 있다고 했다. 동래지방이 신라에 정복되기 이전 장산 주변에 장산국이 있어서 장산이 되었는데, 이 장산국은 삼한시대에 인구가 아주 적은 부족국가였을 것이다. 


간비오산은 해운대해수욕장 쪽으로 뻗은 장산의 한 줄기이다. 간비오산은 이두식 표기이기 때문에 다른 산 이름과 달리 낯설고 생소하다. 이두식이란 우리말을 한자의 음이나 훈을 빌려서 표기하는 것이다. 가령 ‘거북개’를 ‘구포’로 표기했다면 ‘거북 구(龜)’와 ‘개 포(浦)’의 음을 빌려서 표기한 것이다. 



간비오산 봉수대 안내판


‘간(干)’이란 마립간, 칭기즈칸처럼 ‘임금 같이 큰’이라는 의미다. 현대어는 ‘한(큰)’이다. ‘비오(飛烏)’는 ‘날 비’와 ‘까마귀 오’가 합해졌다. ‘날 비’의 훈은 ‘날’이고, ‘까마귀 오’의 음은 ‘오’다. ‘날’과 ‘오’를 합치면 ‘날오’다. 이를 연음화하면 ‘나로’이고, 현대어 ‘나루’다. 그러니까 ‘간비오’는 ‘큰 나루’의 의미를 띠고 있다. 해외나 타 지역과 교역을 하던 큰 나루가 있었다는 것이다. 


국립지리원 발행도면에도 간비오산은 명기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그것은 산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 세종 7년(1461) 이전에 해운대 뒷산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간비오산 봉수대는 해운대 일대를 감시했던 곳으로 경남좌도의 간봉(間烽)의 기점이며 북으로는 기장 남산 봉수대, 서로는 황령산 봉수대와 연락했다는 기록이 있다. 간봉이란 작은 봉수대이기 때문에 정세의 완급을 나타낼 만한 역할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궁이(연소실)는 1거(炬)만 필요했지만, 동백섬을 끼고 입출항하는 선박들과 사람들을 관찰하고 감시하는 초소가 있었을 것이고, 간혹 해상사고 등을 알리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을 것이다.


간비오산은 공간이 좁아 봉수대로 부적합했지만 큰 나루가 있어 교역이 활발했던 곳이다. 그리고 이두식 명칭을 사용한 것으로 보아 지역민들이 오래전(적어도 고려 시대)부터 사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해운대라이프의 주장처럼 봉수대로서는 미흡한 구조다. 그러나 ‘봉수대’의 명칭을 살려 더 보완하여, 봉수대 체험이나 기념할 만한 공간으로 역사의식을 고취하는 장으로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박일 / 제65회 부산광역시 문화상(문학부문) 수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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