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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비오산 봉수대
  • 얘성탁 발행인
  • 등록 2024-03-12 11:3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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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수대라고 하기엔 미흡한 복원 구조



전망 좋은 간비오산 봉수대에 오르니 해운대 앞바다뿐만 아니라 서쪽으로는 황령산도 잘 보여 지금이라도 봉화를 전달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봉수대는 밤에는 횃불(烽)을 피우고 낮에는 연기(燧)를 올려 외적이 침입하거나 난리가 일어났을 때 긴급한 소식을 중앙에 전하는 곳이었다. 



봉수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린시티 전경

봉수대 안내판에서는 거수(횃불이나 연기의 개수)를 달리하여 정세의 완급(緩急)을 나타냈다고 되어 있다. 평상시에는 1거(炬), 왜적이 해상에 나타나거나 적이 국경에 나타나면 2거, 왜적이 해안에 가까이 오거나 적이 변경에 가까이 오면 3거, 우리 병선(兵船)과 접전하거나 국경을 침범하면 4거, 왜적이 상륙하거나 국경에 침범한 적과 접전하면 5거씩 올렸다고 한다. 



봉수대 계단


그러나 봉수대 위 연통이 안내판과 문헌에 5개로 기술된 것과 달리 현재 간비오산 봉수대는 연통이 하나뿐이라 1거만 올릴 수 있는 구조다. 그럼 1개의 연통으로는 2개 이상의 봉화를 올릴 수 없으니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이웃 봉수대에 알릴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봉수대 연소실 내부


게다가 복원된 아궁이(연소실) 구조도 비가 내릴 경우 불을 지필 수조차 없어 보이고 연기는 사방으로 흩어져 버릴 모양새다. 물론 적의 침략이 있을 때 안개나 구름, 비, 바람 등으로 인해 봉수로 전달이 불가능하면 봉수대는 포성(砲聲)과 각성(角聲. 뿔로 만든 나팔 소리)으로 주위의 주민과 수비군인에게 급보를 알리고, 봉수군이 다음 봉수대까지 달려가서 알렸다고 한다. 





1474년(성종 5)에 모든 봉수대의 아궁이 위에 반드시 연통을 높이 달아서 낮에 올리는 연기가 바람에 흩어지지 않고 잘 보일 수 있게 했다는데 높은 연통도 없다. 또한 봉수대 위에는 임시로 집을 지어 각종 병기와 생활용품을 준비해 놓게 하고 봉수군(봉화군·봉졸·봉군)과 이들을 통솔하고 감시하는 오장(伍長)이 생활하면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봉수대 위엔 아무런 구조물이 보이질 않는다. 



봉수대 주변의 세죽 군락


아무리 봐도 봉수대라고 보기 힘든 현재의 구조보다 최소한 아이들의 체험공간이 될 수 있게 봉수대로 인식할 수 있는 구성이 필요해 보인다. 

우동 경로당으로 내려오다 봉수대 아래 군락을 이루고 있는 화살대용 세죽(細竹)은 이곳에 봉수대가 있었음을 여실히 증명하듯 군락을 이루고 있다. 


/ 예성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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