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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65) 환청과 망상
  • 편집국
  • 등록 2024-03-12 11: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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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 빨래터의 풍경 (사진 리영달)


며칠 전에 89세치고는 정정한 할머니가 입원하셨다. 키도 크고 몸도 건강해 보이는 인텔리 할머니다. 망상 증세가 있어 집에서 5년 정도 간병하다가 고관절 골절로 수술하고 우리 병원에 오셨다. 일주일 만에 조금씩 걸으시는데 평소에는 교양이 있어 얌전하신데 한 번 망상 증세가 시작되면 몇 사람이 붙어도 힘들 정도로 거칠어지고 폭력적이 되며 주위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환청이 있어 한 번 이상한 지령을 들으면 식사를 일체 거부한다.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며 물도 안 마시고 음식을 완강히 거절한다. 음식에 독약이 들어 있어 먹으면 죽는다고 한다.



몇 해 전에 TV에서 ‘선풍기 아줌마’라는 여성을 본 적이 있다. 환청을 듣고 얼굴에 식용유 등 온갖 물질을 넣는 시술을 하여 얼굴이 선풍기처럼 부풀어 오르고 딱딱하게 변하여 도저히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 얼굴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환청 증세에 의한 피해자인데  조금 일찍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면 저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불쌍하기도 하고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그 환자를 보면서 환청과 망상이 얼마나 무서운 병인지 알게 되었다. 


치매에도 좋은 치매가 있고 나쁜 치매가 있는데 환청과 망상은 아주 악성의 치매이다. 요양병원에도 종종 환청과 망상을 가진 환자를 보게 된다. 


처음에 말한 이분도 밤새 자고 나서 환청이 사라지면 다시 먹기 시작하는데 아주 많이 먹는 바람에 설사를 자주 한다. 체구가 크고 식성도 좋고 소화도 잘 시켜 치매증세로 먹고 또 먹고, 음식을 끝없이 요구한다. 

자고 나면 아침부터 화장을 하고 외출 준비를 서두른다. 남편이 밖에서 기다린다며 막무가내로 나가려고 한다. 못 나가게 하면 안절부절못하고 폭력적으로 변하며 무서운 얼굴을 하고 온갖 욕설을 하여 곁의 사람을 괴롭혀 두세 사람이 붙어야 겨우 제지할 수 있다. 


집에서 간병할 때도 나간다고 고집부리다 넘어지면서 고관절 골절이 왔다고 한다. 이런 경우 집에서 간병하기는 너무 어렵다. 수시로 요양보호사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하고 같이 어울려 노래도 부르고 하면서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리며 안정시켰다고 한다. 항상 옆에 돌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분이다. 

잠시 정신이 돌아왔을 때 문진을 해보니 젊었을 때부터 여유 있게 사셨는지 운동도 많이 하셨고 음식도 잘 드셨다고 한다. 일찍 청상과부가 되었지만 경제적인 것은 좋았는데 많이 외로웠다고 한다. 


마음의 상처가 망상이라는 증세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젊었을 때는 아이들 키우기에 바빠 자신의 감정 따위는 억누르고, 아이들 아버지의 빈자리를 메꾸려고 힘든 일을 마다하지 않고 억척스럽게 살다가 어느덧 자녀들이 성장하자 마치 둥지에 새가 다 날아가고 빈 둥지만 남은 것처럼 외로움과 울분이 이런 망상으로 나타나지 않았나 생각된다. 



백세시대에 즈음하여 경제적으로 걱정하는 만큼 건강도 저축이 필요하고 치매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마음의 병이 오지 않게 감정 컨트롤도 하면서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는 것을 연습하자. 마음의 병도 치유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신체적인 건강과 더불어 정신적 건강에 대해서도 생각하며 살아가야 할 시대이다. 


지금도 늦지 않다. 가까운 노인복지관에 가서 수업을 들어보자. 좋은 친구가 보이면 이성이든 동성이든 적극적으로 사귀어보자. 친구들과 스포츠댄스도 배워보자. 핸드폰으로 쇼핑도 하고, 장 보는 것도 배워보고, 기차표 예매하는 것도 배워보자. 은행일도 집에 앉아서 송금하고, 세금도 내보자. 하나씩 익혀 나가다 보면 의외로 쉬운 것을 여태껏 포기하고 살았구나 후회하게 된다. 


스마트폰을 잘 활용하면 뇌도 활성화되고 내가 모르는 세상과도 만나게 된다. 건강한 노년은 내가 조금씩 노력하면서 얻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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