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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64) 아버지에 대한 추억
  • 편집국
  • 등록 2024-02-21 15: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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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소를 운반하다 (1960 남강상류. 사진작가 : 리영달)


박 할아버지는 1930년 생(94세)으로 한 달 전 낙상으로 팔 골절을 당하여 수술을 하고 안정을 위해 입원하셨다. 일본에서 태어나 살다가 해방이 되어 가족들과 귀국하셨다. 일본을 상대로 한 무역회사에도 근무하여 일본어를 유창하게 하신다. 구순이 넘었지만 건강하셔서 부럽기도 하다. 배뇨장애가 있어 소변 잘 나오게 하는 약 4종류를 드신다. 말하는 모습이나 행동이 필자의 아버지와 너무 닮아 자주 대화를 하는 편이다. 


이분은 배우자를 10년 전에 사별하여 60대 초반의 아들이 종종 면회를 온다. 아들이 웃는 모습이나 말하는 모습이 박 할아버지를 연신 닮아 ‘피는 못 속이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가 말년에 어떤 병을 앓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 자식도 거의 비슷한 병으로 고생할 확률이 높아 부모나 조부모의 병력(病歷)을 살펴보고 미리 대비하는 것이 좋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오래 된 것은 밭두렁에 나가 들판 끝에서 걸어오시는 아버지를 기다렸던 때이다. 지금도 종종 꿈에 아버지가 나타나는데 해 질 무렵 들판 끝에서 걸어오시는 모습을 본다. 의복이나 체형,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걷는 모습을 보면 아버지인지 아닌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아부지~’하고 외치며 달려가 손을 잡으면 아버지는 두 손으로 나를 하늘 높이 번쩍 들어 올려주곤 하셨다. 


이런 꿈을 꾸고 난 다음날 병원 회진을 하면 한 분 한 분이 다  부모님 같아 목이 잠길 때도 있다. 자녀를 낳아 금지옥엽으로 키우다가 역할을 다 마치니 병든 몸만 남는다더니 도움을 받기 위해 요양병원으로 오시는 분이 많다. 심신만 건강하면 여행도 다니고 문화센터나 복지시설에서 사람도 만나고 춤도 추고 하실 텐데 안타깝다.



4월 총선이 다가오니 한 젊은 정치인이 노인들 지하철 무료 탑승을 제한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는데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치이다. 지금의 65세 이상 한국인은 전쟁 후 잿더미에서 출발하여 세계인이 놀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룬 분들이다. 이분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산업화가 진행되어 국민들이 수백 년간 이어온 굶주림에서 해방되었다. 이분들의 노력과 세금으로 지하철이 건설되어 지금은 청년세대들이 그 과실을 따먹고 있는 것이다. 


노인들이 지하철을 타고 많이 다닐수록 건강해져 국민의료비도 크게 절약된다는 검증된 자료도 있다. 노인을 위한 체육재활시설이나 문화공간을 많이 만들어 집에만 계시는 노인들을 밖으로 불러내어 치매도 예방하고 건강수명을 한 달이라도 연장시키는 것이 국가나 사회나 가족을 위해서도 이익이다. 


환자 중에는 ‘젊었을 때 일만 죽도록 하여 몸을 망쳤다’며 한이 많은 사람도 있다. ‘고생한 것을 말하라면 책을 써도 몇 권은 쓰겠다’고 하는 분도 계신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한국인의 건강수명은 73세이고 기대수명은 83세로 대략 생애 마지막 10년을 병중에 살다가 보낸다고 한다. ‘9988234’라는 말대로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 3일 아프다가 죽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는 72세 때 중풍이 와서 거의 10년간 누워계셨다. 하루는 고향 집에 가니 아버지가 동네를 돌아보고 싶다고 하여 내가 등에 업었는데 너무 가벼워 눈물이 핑 돌았다. 늘 태산 같으셨던 아버지가 이렇게 가벼워졌단 말인가? 아버지를 업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동네우물도 보고, 강변에 나가 지금은 없어진 나루터도 보았다. 


어릴 때 밤에 자고 있으면 강 건너편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현두야~ 배 건너오너라~” 바람결에 아버지의 소리를 가족 중 누군가가 들으면 어머니가 맏형을 깨우고 형과 나는 일어나 호롱불을 들고 강변으로 달려가 작은 배를 물에 띄워 강을 건너가 아버지를 모시고 오곤 했다. 


나이 들수록 아버지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또한 그런 마음으로 환자들을 대하려고 노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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