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는 66세로 2020년에 자궁출혈이 계속되어 검사해 보니 자궁내막암이었다. 환자에겐 1녀 1남이 있었는데 딸은 결혼하여 손주가 둘 있고 아들은 미혼으로 서른 살이었다.
어머니가 암에 걸리자 아들은 직장을 6개월간 휴직하고 간병을 하였다. 이곳저곳을 검사할 때나 수술할 때 아들이 항상 어머니 곁을 지켰다. 항암약물치료로 입원할 때도 아들이 같이 입원하여 24시간 간병을 하였다.
아들의 지극정성 간병에도 무심하게 1년 후 암이 재발하여 간, 폐에까지 전이가 되었다. 병원에서는 이제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며 사회복지사가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봐 준다고 했다. 하지만 편안히 임종을 맞으려는 호스피스 병원도 대기 줄이 길어 우리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온 것이다. 환자는 암 투병 중 올해 초 넘어지면서 머리를 다쳐 뇌출혈 후유증으로 정신도 온전치 않았다. 침상에 누워 일어나지 못한 지 몇 달이 되었다고 한다.
아들은 약해 보였지만 착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눈물을 글썽이며
“선생님, 우리 어머니를 꼭 살려주십시오. 연명술도 꼭 해주십시오.”
어머니를 어떻게든 살리려는 애착이 너무 강했다.
말기 환자나 중환자가 입원하면 대부분 연명술이나 사망 임박 시 심폐소생술을 할 것인지 묻는다. 아들이 설명을 다 듣고 서명을 하는데 필체가 너무 작고 약하였다. 필체를 보면 사람의 정서적, 신체적 건강 상태를 알 수 있지 않은가!
환자는 올 3월 말에 입원하였다. 너무 오래 와상(臥床) 상태였는지 엉덩이 부위에 욕창이 있었다(와상 - 침상에 꼼짝없이 누워있는 상태). 입원 1주 후인 월요일 오후 2시 면회가 잡혀있었다. 토요일부터 환자의 혈압이 떨어지면서 전신상태가 급격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아들이 울먹이며
“선생님, 어머니를 최선을 다하여 잘 보살펴 주세요. 그리고 일찍 가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말해주세요. 어머니를 다시 만나면 정말로 사랑하고 꼬옥 껴안아드리겠다고 말씀해 주세요.”
“주말 넘기기가 힘들 것 같은데 오늘 올 수 있겠습니까?”
아들은 울기만 하고 대답을 못하였다. 아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워하고 얼마나 사무치게 절망하는지 그 슬픔과 전율이 전해져왔다.
월요일이 되어 보호자를 만나보려고 했는데 면회가 취소되었다고 간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환자 상태가 나빠져 아들에게 전화를 했으나 계속 전화를 받지 않았다. 오후 2시경 딸에게 전화를 하니 겨우 연락이 되었는데 울음을 터뜨리며 전화를 받는 것이다.
“선생님, 지금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는데…. 어찌 이런 일이 생깁니까? 동생이 자살을 했어요. 어머니에게는 절대 비밀로 해주세요. 병원 직원들에게는 그냥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해주세요.”
오후 늦게 딸에게서 “선생님, 동생 장례식을 치러야 해서 어머니를 이틀만 더 꼭 살려주세요”라며 연락이 왔다.
장례를 치르고 환자의 남동생과 딸 내외가 찾아와 어머니와 면회를 하였다. 어머니가 거친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도 눈을 뜨면서 손주들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선생님, 손자, 손녀들이 토요일밖에 시간이 없어 토요일 면회를 신청했으니 어머니를 토요일까지는 꼭 좀 살려주세요.”
어머니 저승 가는 날까지 손주들 스케줄에 맞춰야 하다니….
환자는 토요일 손자, 손녀를 만나고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 편안히 하늘나라로 가셨다.
먼저 가서 기다리던 사랑하는 아들을 하늘나라에서 만났을 것인가? 아들에게 전화했을 때 아들의 말을 좀 더 집중해서 들었더라면 안타까운 한 목숨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탄식이 나왔다.
암이나 말기 질환을 간병하면서 간병하던 보호자가 먼저 사망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오로지 환자 병구완에 매달리기 때문에 피로가 쌓이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누적되어 어느 순간 심장마비 등으로 돌연사를 하는 것이다. 환자를 돌보다 배우자가 먼저 가는 경우는 종종 있다. 어머니를 돌보다 아들이 먼저 가는 이런 경우는 아주 안타까운 사례이다.
어머니가 아프다고 다 큰 아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간병하는 것이 진정 어머니를 위하는 것일까? 직장 생활을 계속하면서 간병인을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어머니의 마음을 덜 아프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작 위로받아야 할 사람은 어머니보다 아들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