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일본식 주택
박 할아버지는 6.25전쟁 참전용사로 보훈병원에서 우리 병원으로 오셨다. 전립선비대증이 있어 화장실에 자주 가고 식사를 잘 못하여 딸이 모시고 왔다. 60대의 딸과 이야기를 해보니 필자와 비슷한 세대로 비슷한 경험을 하여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공감이 되었다.
환자는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다가 해방이 되어 귀국했는데 6.25전쟁에 참전하여 중공군과 싸우다가 총상을 입어 상이용사가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어릴 때 일본에서 공부하여 일본어도 잘하시고 일본에 대한 인상이 아주 좋습니다.”
인지가 많이 쳐지는 노령자들 중 드물게 ‘이따이(일본말로 아파)~’라고 말하는 분이 있다. 이런 분들은 어린 시절 일본에서 자란 사람들이다. 부산에는 해방되어 일본에서 귀국한 사람들이 많다. 귀국하여 고향으로 가려는 차에 6.25전쟁까지 터져 부산에 주저앉은 경우도 있다. 필자의 부친도 일본에서 고학(苦學)으로 공부를 했고 장인 어르신도 일본에서 공부를 했다.
장인 어르신에 대한 아내의 기억을 여기에 옮긴다.
“아버지는 시골에서 보통학교(일제강점기 때의 초등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도 학비가 없어 학업을 포기했었다고 합니다. 당시 중등학교의 학비는 매월 쌀 한 가마 정도로 비싸 부잣집 자녀 아니고는 엄두를 못 내었다고 해요.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던 아버지는 일본 동경에 가면 고학으로 학비를 벌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일본으로 건너갔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새벽부터 신문배달을 하고 극장에서 사이다도 팔면서 야간학교를 다니다 해방이 되어 귀국했습니다.
해마다 벚꽃이 피는 이 시기가 되면 아버지는 마음의 병이 나셨습니다. 일본에는 벚꽃이 피면 학교 동기생들이 모여 벚꽃 아래에서 도시락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해마다 일본의 학교 동창회에서 초청장이 오는데 바로 위 형님이 6.25 때 행방불명이 되는 바람에 신원 조회에 걸려 번번이 가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조실부모하고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갔으니 친구들이며 주위 사람들의 보살핌으로 자신이 잘 자랐고 그곳이 어릴 적의 고향이나 다름없으니 얼마나 그리워했겠습니까?
우리는 학교에서 일본 사람은 아주 나쁘다는 교육을 받았지만, 아버지는 일본 사람에게 아주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만난 일본인은 대부분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겸손하고 시간과 약속을 잘 지키고 열심히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돈 한 푼 없이 조선에서 온 어린 유학생을 이웃의 일본인들이 잘 돌보아주었다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어릴 때 아버지는 어머니 보고 ‘닌징 넣고 가마보꾸 볶아라’고 말씀하셨는데 ‘당근 넣고 오뎅을 볶으라‘는 말이었습니다. 일요일은 온 가족이 자기방 소제도 하고 점심때는 아버지가 구루미빵(크림빵)을 자주 사 오셨습니다. 온유하고 선한 아버지의 성품으로 저희들이 잘 자랐다고 생각됩니다.
10년 전 남편과 교토, 오사카를 여행한 적이 있는데 한적한 골목길에 가정식 식사를 위해 걷다가 제 어릴 때 살던 일본식 집과 꼭 같은 집을 발견하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어쩌면 그렇게 오래된 집을 닦고 가꾸어 잘 보존할 수 있을까요? 집은 목조건물로 낡았지만 대문에서 현관으로 가지런한 돌들이 놓여있고 담안으로 튤립과 선인장 같은 식물이 어울려 피어 있었지요.
봄에 동경을 구경한 적이 있는데 우에노공원의 벚꽃이 화창하게 핀 날, 벚꽃나무 아래에서 사람들이 동창회를 하며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보니 아버지가 생각나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가 조금만 더 건강하게 사셨더라면 우에노공원에서 일본 동창생들과 만나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일본 동창회에서 온 초청장을 받고 그렇게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해 우셨던 아버지. 친구들과 만나 옛날 어릴 적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면 얼마나 행복했겠습니까?
학창 시절 수국이 많이 핀 일본 정원에서 친구들과 찍은 아버지의 사진은 병중에도 늘 머리맡에 두고 보시던 사진입니다.
올여름에 일본 규슈의 수국축제에 며칠 다녀올 계획입니다. 아버지 사진을 가지고 가서 수국이 만발한 모습을 보여드릴 생각입니다. 아버지는 저희들에게 항상 정직하고 약속을 꼭 지키는 사람이 되라고 하셨는데 이런 점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아버지 절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벚꽃이 화창하게 핀 봄날이다. 아버지와의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려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