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 물망골의 열석(?)
지난 2월 3일자 해운대라이프(제568호) 1면에서는 ‘물망골 주변에 보이는 다양한 돌의 크기와 배치를 봐서 부산의 고고학 전문가들과 장산유적탐사대가 선사시대의 삶터와 무덤의 흔적으로 추정한다’고 보도한 바도 있다.
아무래도 궁금증을 못이긴 탐사대는 경북대학교 박물관장인 박천수교수팀을 초청하여 다시 한번 정밀 탐사에 나섰다. 3월 18일 토요일 오후 1시 옥숙표 탐사대장, 강우동, 박용구, 임선화 대원이 안내를 맡고 본기자가 처음으로 동행했다.

장산마을행 중턱 도로변에서 물망골 계곡의 왼쪽 숲속을 헤치며 내려가다 만난 2기의 무덤 흔적을 보고 박교수는 “이것은 고려시대 유력자의 무덤이 틀림없다”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3년 전부터 일대를 탐사해온 옥숙표 대장은 “드디어 물망골 유적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다”며 기뻐했다.
고대 한일교류사가 전공인 박교수는 “40년간 유적 발굴 현장을 다닌 고고학자로서 석곽과 기단, 망주석, 높이 1.5m의 담장을 가진 점에서 고려시대 귀족묘라고 판단된다. 유사한 예는 강화도의 고려무덤에서 볼 수 있다. 문화재적 가치가 크기 때문에 주변 발굴조사에 부산지역 전문가들이 먼저 나서면 측면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고려시대 귀족 무덤터로 판명된 곳
같이 참여한 탐사대원들은 오랜 의문이 풀린 데 만족하면서도 주변에 눈에 띄는 특이한 돌의 배치와 모양에 대해서는 고려시대 무덤 발굴과정에서 주변을 같이 조사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고려시대에는 송정천 옆 장산예비군 훈련장 일부가 바다였을 가능성이 높아 구릉지대인 물망골에 모여 살았으며, 고려시대 해변으로 들어오는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호족, 장군 등 유력자들이 군사를 지휘하는 군영,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다. 규칙적인 대형 열석 또한 구석기 유적으로 추정되며 이산표석이 8기나 산재하고 있는 것은 이 일대가 예사롭지 않은 문화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해운대구와 문화재청에서는 주변 일대에 대한 정밀 유적탐사를 벌여 역사적 사실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어쩌면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미궁에 빠진 장산국의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영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