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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 기슭 선사시대 매장 터
  • 편집국
  • 등록 2023-02-02 15:5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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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 매장 터로 추정되는 장산 물망골의 암석 (사진 : 박용구 조류탐조가)


◇ 장산국 이전에도 삶의 흔적


금관가야 김수로왕의 세력 확장은 해운대 지역까지 뻗쳤다. 그 과정에서 지방관을 중심으로 한 무리의 집단이 해운대 장산 기슭에 닿았다. 지방관(선인)은 이미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고 있던 마을의 처녀와 결혼하였으니 그녀가 바로 선인이 선택한 위대한 여자, 즉 고선옥이다. 


장산국 건국신화에서 나타나듯이 해운대와 장산 인근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촌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그럼 그들은 누구인가? 한반도 남부지역은 삼국시대가 시작되기까지 선사시대로 보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라 선사시대의 끝을 장산국이 장식한 셈이다. 



◇ 구석기 · 청동기 유물 


장산국의 선인집단이 철기문명을 들고 왔다면 53사단 호국사 앞마당에 존재하는 여러 고인돌은 그보다 앞선 청동기시대의 유물로 보인다. 또 고인돌에 앞서 중동, 좌동과 청사포 구석기 유적에서도 나타나듯이 이 지역에는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단지 선사시대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2.5~2.8미터는 더 높았다는 과학적 근거로 볼 때 사람들이 터를 잡고 살 수 있던 평탄한 공간은 지금보다 더 협소했을 것이고 대부분 구릉지대를 끼고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면 선사시대 사람들의 장례문화는 어떠했을까? 대체로 한반도 지역에선 신석기시대부터 옹기나 돌을 이용해 묻는 매장문화가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래서 무덤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로 돌이 많이 사용되었다. 왜 돌이 많이 사용되었는가에 대해선 ‘영혼이 잘 떠나지 못하게 무거운 돌로 눌렀다’는 설과 ‘돌이 지하세계를 나타낸다’는 설 등이 있지만 아마 사용하기 쉬워서가 아닐까 추측해 본다. 


선사시대 때 한반도 지역 지천에 돌이 널려 있어서 산에서도 쉽게 돌을 구해 축대를 쌓거나 시체를 덮을 때 유용하게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다 점차 청동기시대로 넘어오면서 권력층들이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큰 바위로 덮는 이른바 고인돌이 생겼지만 일반 평민들은 여전히 돌로 무덤의 기초와 축대를 쌓고 돌로 덮는 방식을 사용한 듯하다. 



신비로운 느낌을 자아내는 장산 물망골 매장 터


◇ 선사시대 매장 터가 있는 장산 물망골


이러한 선사시대의 매장 흔적이 우리 고장에서 발견되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곳은 선사시대인들이 살기 적합했던 장산의 남쪽 기슭, 그것도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풍부한 계곡물이 흐르는 물망골 지역이다. 이미 여러 차례 장산유적탐사대가 탐사를 했지만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축대 흔적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작년 연말에 어느 전문가가 선사시대 매장의 흔적이 아닐까 하는 의견을 개진하면서 다시금 탐사와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탐사한 물망골의 선사시대 매장 터는 먼저 구릉지대에 작은 돌로 들여쌓기 형식의 3~5단의 축대를 쌓아 무덤 터를 만든 다음, 무덤 주위에 돌을 이용하여 담을 쌓아 무덤을 보호하는 형태다. 토기의 파편이 보이질 않아 옹관묘보다 일종의 돌무지 무덤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있는 높고 커다란 가공석은 이곳이 무덤 지역임을 알려 함부로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용도로 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즉, 물망골 일대 터를 잡은 선사시대인들은 구릉지대에 석축을 쌓아 매장 터를 만들어 무덤을 세운 다음, 가공한 큰 돌을 세워 매장 터의 경계를 알린 것이다. 


◇ 매장 터를 지킨 선돌


매장 터임을 알리던 선돌들은 오랜 세월 동안 드러난 숫자보다 더 많은 수가 흙 속에 묻혔다. 영원히 잊힐 뻔했던 큰 선돌이 장산마을 진입로 공사 도중 모습을 드러냈다. 허나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쪼개어 임도 축대로 사용한 경계석이 많았다. 다행히 오래전부터 물망골 지역을 유심히 탐사하던 장산유적탐사대의 눈에 띄어 나머지 경계석은 원형을 보존하게 하였다. 


만일 장산유적탐사대의 탐사와 관찰 활동이 없었다면 선돌들은 그냥 일반 바윗돌로써 길가에 묻히거나 석축으로 이용되어 영영 존재를 감추었을지도 모른다. 이를 계기로 선사시대 매장 터뿐만 아니라 물망골의 다른 유적을 탐사하고 보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장산 물망골은 아직 유적의 극히 일부만 우리에게 보여준 것일지 모른다. 장산에 무슨 유적이 어떻게 숨 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신비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바로 물망골이다. 때를 같이하여 부산시에서 2023년 3월부터 이곳을 매장문화재 유존지역으로 보존하기 위한 정보고도화사업의 학술용역에 착수하게 되었다. 아무쪼록 본 사업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어 해운대의 역사·문화를 밝혀 우리나라 선사유적의 분묘군 역사가 올바르게 기록되기를 바란다.


/ 예성탁 발행 ·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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