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부에 가시가 많아 극피동물이라 불리는 해삼은 어떻게 거친 해양 생태계에서 4억 년간이나 살아남았을까? 해삼은 심장도 뇌도 없고 눈조차 없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원시 미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에너지를 끊임없이 소비하는 고등동물과는 달리 극단적인 ‘저에너지 효율 생태’를 유지하면서 종에 따라 보통 5년에서 10년, 길게는 수십 년까지도 생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수온이 급격히 오르는 여름철에는 신진대사를 거의 제로(0)에 가깝게 낮추고 활동을 멈추는 ‘하면(夏眠)’을 통해 에너지를 보존하며 환경에 적응한다.
이들의 생태는 깊이 들여다볼수록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 생물학적 경이로움을 느끼게 한다. 해삼은 천적의 공격을 받으면 주저 없이 자신의 내장을 몸 밖으로 쏘아 버리는 ‘내장 토출’을 감행한다. 포식자에게 내장을 먹이로 던져주고 자신은 빈 껍데기로 도망치는 치명적인 선택이다. 이때 발사된 해삼의 내장은 토출 후 수 초 만에 강하고 끈적끈적한 흰 실로 변해 천적의 지느러미를 묶어 버린다. 여기에다 해삼이 가진 강한 사포닌계 독성 물질이 천적의 시야를 멀게 하거나 운동신경을 마비시켜 버린다.
그렇지만 해삼은 불과 수주일 내에 미분화된 세포들이 빠르게 증식하여 완벽하게 장기를 재생해 낸다. 또한 이들의 줄기세포는 천적에게 찢긴 생체를 재빨리 복원함은 물론, 몸통이 잘려 토막이 나면 똑같은 해삼 두 마리나 세 마리로 재탄생한다고 하니 신비로움의 극치다.
남해 통영산 건해삼
이뿐만 아니라 해삼의 근육은 평소에는 말랑말랑하다가도 자극을 받으면 순식간에 돌처럼 단단해져 천적이 쉽게 삼키거나 찢지 못하게 몸을 보호한다. 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을 스스로 녹여 액체처럼 변했다가도, 안정을 찾으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오는 특별한 능력도 지니고 있다. 과학자들은 해삼의 이러한 여러 가지 생체 메커니즘을 모방해 산업용 신소재나 인체 응용 물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한다.
한약재로 주로 쓰이는 건해삼은 생해삼에 비해 단백질은 약 21배, 칼슘은 11배, 철분은 25배 이상 함량이 높아 주로 남성의 성기능 장애를 개선하고 신장 기운을 보강하는 강장제로 처방되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놀라운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해삼의 삶은 지극히 겸손하다. 인삼의 핵심 성분인 사포닌과 풍부한 무기질을 품어 ‘바다의 산삼’이라 불릴 만큼 인간에게는 소중한 영양을 내어주면서도, 정작 자기의 먹이로는 다른 생물을 공격하지 않고 바다 밑바닥의 찌꺼기와 모래를 삼키는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중국 사람들은 건해삼을 좋아하고, 한국 사람들은 생해삼을 좋아한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해삼 창자를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제공 : 국립해양생물자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