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여름은 유난히 비가 적고 습하면서도 무덥다. 해가 갈수록 여름을 견디는 일이 예전 같지 않음을 실감한다. 며칠 전 먼저 휴가를 떠난 지인의 가족이 지리산 계곡에서 물놀이를 하는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 폭포수와 환한 웃음을 보니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휴가철이다. 해운대 그린시티를 가로지르는 둘레길은 울창한 숲이 만들어주는 그늘 덕분에 한여름에도 걷기 좋다. 숲길을 따라 걷다 보면 매미가 맴맴 울어 여름이 깊어졌음을 알려준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어린 시절 “올여름은 어떻게 지낼까?” 하시며 더위를 걱정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다.
노인들은 대체로 한여름과 한겨울에 많이 세상을 떠난다. 더위와 추위에 적응하는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나이가 들면 몸이 뜨거워도 더위를 잘 느끼지 못해 무리하게 일하다가 온열질환으로 생명을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휴가 문화도 세월과 함께 크게 변했다. 1960년대에는 공무원들이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하는 ‘반공일(半空日)’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는 토요일 오후부터 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었다. 시장에는 매월 셋째 일요일 쉬는 ‘3공일’도 있었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휴가도 점차 바뀌었다. 1989년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자유화되면서 3~5일 일정의 휴가가 보편화되었고, 2000년대 이후에는 설이나 추석 연휴를 이어 일주일 정도 쉬는 문화도 자리 잡았다. 10여 년 전 요양병원에서 근무를 시작했을 때 법정 연차휴가가 15일이나 된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코로나 시기에는 그 휴가를 조금씩 모아 제주올레길 425km를 4년에 걸쳐 걸었던 소중한 추억도 남겼다. 세월은 근로자의 휴식과 삶의 질을 조금씩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어 놓았다.
해운대는 참으로 복받은 고장이다. 바다와 강, 산, 그리고 온천을 함께 품고 있어 예부터 사포지향(四抱之鄕)이라 불린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던 시절, 마산에 살면서 여름이면 처형이 살던 해운대 달맞이길 입구의 작은 아파트에 짐을 풀곤 했다. 하루 종일 바다에서 놀다가 모래가 가득 들어간 신발을 신고 들어와 민폐를 끼쳤지만 처형 가족 누구 하나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 함께 뛰놀던 그 추억 덕분에 지금도 사촌들은 친형제처럼 지낸다. 해수욕을 마친 뒤 해변도로를 건너 맥도날드에서 먹던 햄버거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여름방학이 되면 외지에 사는 자녀들과 친척들이 해운대를 찾는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장산계곡에서 물장구를 치며 보내는 하루가 무엇보다 행복한 여름 선물일 것이다.
휴가의 의미도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휴가가 꼭 여름일 필요도, 멀리 떠나야 할 필요도 없다. 봄에는 꽃을 보고, 가을에는 단풍길을 걷고, 겨울에는 따뜻한 온천을 찾는다. 사람마다 자신에게 맞는 계절과 방식으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 진정한 휴가가 되었다. 휴가는 단순한 쉼이 아니라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 시간이다. 휴가를 기다리는 마음 하나만으로도 평소의 고된 일상을 견디게 된다.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던 시절, 휴가도 반납한 채 일에만 매달리던 동료 의사를 보며 안타까웠던 기억이 있다. 이제는 누구나 당당하게 법이 보장한 휴가를 사용하는 시대가 되었다. 올여름도 충분히 쉬고 새로운 활력을 얻어 일터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그런데 휴가철이 되면 늘 마음 한구석에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요양병원에서 여름을 보내는 어르신들이다. 우리 병원 입원 환자의 절반가량은 1940년대에 태어난 분들이다.
우리가 가난과 굶주림에서 벗어나 이처럼 잘살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이분들의 땀과 눈물로 이루어낸 것이다. 이분들은 부모를 정성껏 모셨고, 또 자녀의 봉양도 받아본 거의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반면 1950년대생부터는 부모는 모셨지만 자신은 자녀에게 봉양 받기 어려운 첫 세대가 되었다.
병실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은 자녀가 다녀간 날이면 표정이 달라진다. 오래 머물지 않아도 괜찮다. 비싼 선물이 없어도 괜찮다. 잠시 손을 잡아드리고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저희를 이렇게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그 짧은 만남이 어르신들에게는 큰 기쁨이 된다. 휴가는 가족과 함께 행복을 만드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사랑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올여름 여행을 떠나기 전이나 다녀오는 길에 요양병원에 계신 부모님이나 친척을 잠시 찾아뵙는 것은 어떨까. 손을 꼭 잡아드리고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그 몇 분이 어르신들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여름 선물이 될 것이다. 그리고 훗날 우리에게도 “그때 찾아뵙기를 참 잘했다”라는 따뜻한 기억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