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의 ‘빨리빨리 문화’를 두고 평가는 늘 엇갈린다. 한때는 이를 한국 사회의 병폐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한국 사람들은 왜 이렇게 조급할까?”라는 자기비판과 자조가 넘쳐났고, 마치 한국인의 민족적 결함인 양 스스로를 비하하는 표현도 적지 않았다.
물론 빨리빨리 문화가 낳은 부작용은 있었다. 졸속 공사와 부실시공, 충분한 검토 없이 서두르는 업무 처리 등은 분명 개선해야 할 문제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이 문화를 평가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산업화와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기의 시대적 산물이기도 했다. 짧은 시간 안에 나라를 일으켜 세워야 했던 당시 ‘빨리’는 생존 전략이었다.
문화는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한다. 흔히 중국인은 ‘만만디’, 한국인은 ‘빨리빨리’라고 말하지만, 이것 역시 고정된 민족성이 아니다. 조선 말기 서양 선교사들의 기록을 보면 당시 조선 사람들은 오히려 느긋한 사람들이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반대로 오늘날 중국은 시장경제를 받아들인 이후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로 변했다. 문화는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날 한국의 빠른 업무 처리 능력은 어디에서 비롯될까. 필자는 그 뿌리 가운데 하나를 공동체 의식에서 찾고 싶다.
한국 사회에서는 맡은 일을 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조직의 성과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기꺼이 보태고 서로 협력하는 문화가 비교적 잘 작동한다. 물론 그만큼 개인이 공동체의 기대에 맞추려는 압박을 받는다는 부작용도 있다.
반면 서구 사회는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자신의 업무는 책임지지만 남의 일에는 쉽게 개입하지 않으며, 타인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손해를 감수하지 않는다. 필자 역시 해외에서 생활하며 이를 여러 차례 경험한 적이 있다. 몇 시간을 기다려 겨우 행정 업무가 시작되었는데도 퇴근 시간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중도에 일을 중단하고 다음날 다시 오라고 했다. 다음날 다시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은 오롯이 민원인의 몫이었다. 병원진료에서 전문의를 한번 만나기 위해 반년이 넘는 시간을 기다린 적도 있었다. 언론에서조차 “기다리다가 죽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너무 편하다”, “생활이 훨씬 효율적이다”며 돌아가기를 망설인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신속한 업무처리와 높은 서비스 수준은 이제 한국 사회의 경쟁력이 되었다.
우리는 한때 빨리빨리 문화를 지나치게 자기비판적으로 바라보았다. 왜정기 이후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자기비하적 사고 역시 이러한 평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장점까지 결함으로 치부하는 악습은 경계해야 한다. 졸속과 성급함은 고쳐야 하지만, 서로를 배려하며 협력해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문화는 소중한 자산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성급한 국민성의 산물이 아니다. 시대적 환경 속에서 형성되었고, 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가 더해져 만들어진 사회적 경쟁력이다. 이제는 자조와 자기비하의 대상이 아니라,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보완해야 할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바라볼 때다.
정승욱 / 문학박사 · 알타이역사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