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장님, 오늘부터 근무하는 박미영 간호사입니다. 많은 가르침 부탁합니다.”
암 병동을 회진하는데 한 간호사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신입 간호사는 대개 고참 간호사에게서 모든 것을 배워 의사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3월이 되면 새로 입사하는 직원들이 많다. 간호사, 간호조무사, 요양보호사, 물리치료사, 원무과 직원, 의사 등 새 얼굴을 만난다.
그런데 박 간호사는 간호사라기보다 목사 사모님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혹시 장롱면허 가지고 있다가 다시 일하십니까?”
“아닙니다. 장롱면허 오래되면 겁이 나서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는 늦깎이로 공부하여 올 2월에 간호사 면허를 따고 3월부터 취업하여 일합니다.”
이야기를 해보니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저는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여 교직과목도 이수하고 중등학교 교사가 될 준비를 다 갖추었는데 당시 교사들 적체가 심하여 임용이 되지 못했습니다. 마냥 놀 수는 없어 수학학원에 강사로 일했는데 저출산으로 학생들이 해마다 줄어 이것마저 계속할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 가게를 창업하여 열심히 일했는데 코로나가 터지는 바람에 가게마저 폐업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48세에 간호대학에 입학하여 52세에 졸업하고 면허증을 따 이달부터 일하고 있습니다.“
“네, 잘 하신 것 같습니다. 요즘 간호사가 귀해 앞으로 20년간은 더 일할 수 있겠습니다.”
의사 동료 중 어떤 사람은 간호사를 못 구하여 폐업하는 경우도 있어 간호사는 많아도 능력 있는 간호사를 찾기가 아주 어려운 실정이다. 해마다 간호사를 2만여 명이나 배출하지만 일이 힘들어 젊은 간호사들이 몇 달을 버티지 못하고 퇴직하는 경우가 많다. 전체 등록된 간호사의 절반이 장롱면허자라고 하니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낭비인가!
박 간호사는 대학생 아들이 둘 있다고 한다.
“그러면 그동안 학비는 어떻게 조달했습니까?”
“대학에 새로 입학하여 알아보니 소득분위 80% 이하에서는 일생에 한번은 국가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큰 도움이 되었고, 또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습니다.”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한 사람은 목적이 뚜렷하기 때문에 20대 초반의 학생들보다 더욱 열심히 공부하는 경향이 있다. 종전까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특별한 이유도 없이 대학에 진학하는데 이제는 학벌 붕괴 사회라 대학 졸업장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시대이다.
오히려 대학만 가지 않았어도 이것저것 할 일이 많은데 대학 졸업장 때문에 백수가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백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왜 외국인 노동자에게 헌납해야 하는가? 바로 한국청년들의 아무 쓸모 없는 대학 졸업장 때문이 아니겠는가? 20대의 그 황금 같은 세월을 아깝게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유럽 선진국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 기술학교, 직업학교로 진학하여 18~19세에 기능인으로 사회에 진출하여 독립적인 생활을 한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도 하루속히 고등학교를 직업, 기술학교로 바꾸어 급격히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52세의 신규 간호사. 병원에 있으면 이런 사람을 종종 본다. 한 분은 SKY 대학 화학과를 나와 직장 생활을 하다 다시 물리치료학과에 입학하여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사람이 있다. 늦깎이 직원들의 공통점이 있다. 눈길이 부드럽고 사회생활을 하다 와서 그런지 직원들과 화합을 잘한다. 의사 선배 중 한 분은 교육대학을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다시 의대를 졸업하고 의사로 활동하는 분도 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른 때이다. 배출되는 간호사는 많지만 힘든 업무에 비해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여 의료현장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간호사는 많지 않다.
노령사회에 AI가 대처하지 못하는 분야 중 하나가 간호 파트이다. 간호는 환자와 눈을 마주치며 정서적인 교류가 필수적이라 로봇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박 간호사가 우리 직장에서 오래 일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