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은 한국인에게 있어 단순한 시간의 경계가 아니라, 희망과 전진을 다짐하는 상징적 변곡점으로 인식되어 왔다. 이러한 새해에 대한 기대와 희망은 특정 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인간 일반의 보편적 심리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남선과 양주동 등 근대 지식인들은 ‘설’의 어원을 ‘슬프다’, ‘서럽다’와 같은 정서로 해석하였다. 그리고 그 영향력은 완전히 소멸되지 않은 채, 임재해, 원용문 등의 ‘낯설다’ 의미로 확장 해석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민족 정서를 부정적으로 규정하는 문제를 넘어, 새해가 지니는 보편적 의미와도 부합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이는 민족 정체성을 왜곡하는 자기비하적 해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자기비하적 해석이 ‘설날’의 어원 문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예컨대 “우리는 900백여 차례 외침을 받으면서도 단 한 번도 타국을 침략하지 않은 평화 민족이다”, “조선 사회는 당파 간 사적 이익을 위해 국가를 도외시한 채 피비린내 나는 분열과 투쟁에 빠져 있었다”, “우리 전통음악과 정서는 ‘한(恨)’으로 대표되며, 따라서 우리는 본질적으로 ‘한(恨)이 많은 민족’이다”와 같은 서술들이 그것들이다. 이러한 내용은 대중에게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일종의 통념처럼 자리 잡게 되었고, 특히 당쟁(黨爭)은 여러 역사 드라마의 단골 소재로 재생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일지라도, 논리적으로 면밀히 검토해 보면 한결같이 자기비하적이며 패배주의적인 역사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
왜 이럴까? 모두 전통문화와 역사 해석에 대한 악의적 편집에 의한 결과이다. 이러한 악의적 편집은 과거 어느 순간부터 일정한 경향성을 띠게 되었는데, 때는 왜정시기이다. 1919년 3·1운동 후 무단정치의 한계를 느낀 조선총독부는 새로이 문화정치를 표방하는데, 이에 조선 사람을 반일본인으로 만드는 다음과 같은 교활한 교육 시책을 마련하게 되었다.
“첫째, 먼저 조선 사람들이 자신의 일, 역사, 전통을 알지 못하게 만듦으로써 민족혼, 민족문화를 상실하게 하고, 둘째, 그들의 조상과 선인들의 무위, 무능과 악행을 들추어내어 그것을 과장하여 조선인 후손들에게 가르침으로써 조선의 청소년들이 그 조상들을 경시하고 멸시하는 감정을 일으키게 하여 그것을 하나의 기풍으로 만들고, 셋째, 그 결과 조선의 청소년들이 자국의 모든 인물과 사적에 관하여 부정적인 지식을 얻어 반드시 실망과 허무감에 빠지게 될 것이니, 그때에 일본 사적, 일본 인물, 일본 문화를 소개하면 그 동화의 효과가 지대할 것이다. 이것이 제국 일본이 조선인을 반(半)일본인으로 만드는 요결이다.”
가슴이 섬뜩하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알고 있던 민족문화에 대한 일반적 지식 중 많은 부분은 특정 방향으로 의미를 유도하기 위한 날조이거나 악의적으로 편집된 상식들이었다.
전통문화와 역사교육은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이어야 한다. 교육에 있어서 칭찬만큼 더 좋은 방편은 없다. 과거의 과오는 냉철하게 분석하고 성찰하여 미래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되, 성취와 영광은 정당하게 기려 민족적 자긍심을 고취해야 한다. 한편, 과오에 대한 과도한 강조와 왜곡은 필연적으로 패배주의를 낳을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정승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