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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병오년(丙午年) ‘설날’ 이야기 - 3
  • 편집국
  • 등록 2026-04-09 14:4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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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승욱 소장의 우리 문화 이야기 ⑫


‘설’의 어원에 대한 초기 연구에서 양주동이 제시한 ‘설’의 어원을 ‘슬프다·서럽다’의 의미를 지닌 ‘섧다/설다’에서 찾는 견해는, 그 근거 해석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있는 독단적 주장이다.


그는 『삼국유사』 사금갑(射琴匣)조에 나타난 달도(怛忉) 풍습을 그 근거로 삼았으나, 해당 기록을 면밀히 검토하면 그것이 ‘설’의 어원을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달도 풍습은 새해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기대와 희망을 가지되, 동시에 방심을 경계하고 스스로를 근신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주동은 이 풍습을 곧바로 설날의 어원과 연결시키는 해석상의 오류를 범하였다. 더 나아가, 달도의 한자 의미 역시 ‘달(怛/근심하다, 슬퍼하다)’과 ‘도(忉/근심하다)’에 ‘근심하다’와 ‘슬퍼하다’가 혼재되어 있음에도, 이를 ‘슬퍼하다’라는 의미로만 한정하여 해석함으로써 견강부회적 결론에 이른 한계를 드러낸다.


양주동의 이러한 ‘설=슬프다·서럽다’ 어원설은 독자적인 창안이라기보다, 개화기 민족주의자로 잘 알려진 육당 최남선(1890~1957)의 해석을 계승·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1928)』에서 정초(正初)에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을 서럽게 여기는 정서에서 ‘설’이 유래했다고 보았고, 이를 후대에 양주동이 음운론적으로 『삼국유사』의 기록을 근거로 ‘섧다→설다’의 체계로 정리한 것이다.


결국 양주동의 ‘설=슬프다·서럽다’ 어원 해석은 최남선의 견해에 달도 풍습을 결부시켜 정당화하려 한, 견강부회적 성격이 강한 주장에 지나지 않는다. 이로 인해 최남선에서 양주동으로 이어지는 해당 설은 오늘날 학계에서 사실상 폐기되어, 단지 하나의 참고적 견해 정도로만 취급되고 있다. 실제로 『한국민족대백과』와 같은 사전류에서는 더 이상 ‘슬프다·서럽다’ 어근설을 소개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최남선·양주동의 이 주장이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매체를 통해 여전히 유통되고 있다는 점이다. 확인된 사례로는 ‘우리문화신문’, ‘경기일보’ 등 일부 매체에서 여러 견해를 병렬적으로 소개하는 과정에서, 이른바 ‘슬프다·서럽다’어원설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상황이다.


 최남선과 양주동의 ‘설=슬프다·서럽다’라는 어원설이 대중 매체를 통해 반복적으로 소개되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다. 일반 대중이 이러한 어원설을 접할 경우 충분히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설=슬프다·서럽다’설은 더 이상 유효한 설명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 주장은 논리적 근거가 빈약한 견강부회에 불과하고, 나아가 민족문화의 의미를 부정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탓이다.


한국인 가운데 특별히 어려운 사정을 지닌 경우를 제외하면, 새해를 슬픔이나 비통함 속에서 맞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실제로 한국리서치의 연례 여론조사에서도 대다수 국민이 새해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마음으로 맞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일부 응답에서 불안이나 두려움이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새해에 대한 기대와 염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한국인만의 특징이 아니라,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인간 일반의 보편적 심리라고 할 수 있다. ‘설날’은 언제나 한국인에게 슬픔의 시간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과 전진을 다짐하는 하나의 상징적 변곡점으로 인식되어 왔다.


 정승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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