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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시립박물관과 북정동 고분군
  • 편집국
  • 등록 2026-03-27 13:3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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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양산 지역의 역사는 가야와 신라의 투쟁사로 본다. 원래 양산 지역은 삼랑진 만어사 창건 설화에 김수로왕이 등장하는 점과 양산패총에서 나온 토기가 김해 회현동의 그것과 같다는 점 등을 종합해 볼 때 김해 가락국의 영향력 아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필자 주)

양산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양산 금조총에서 발견된 금조다리 유물

그 후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타난 대로 신라의 제4대 탈해왕(재위 57년~80년)부터 시작된 김해 가락국 정복 전쟁으로 신라가 양산 지역을 점령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신라 제6대 지마왕(재위 112년~134년)이 가락국 정복을 포기하고 양산 지역에서 철군함으로써 다시 가락국이 차지하게 된다. 2C 경부터 양산 지역으로 진출한 가락국은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5만 군사가 밀려오기까지 양산을 차지하고 있었다. 



양산시립박물관 옆 북정리고분군


그래서 양산 북정동 고분군에서 발굴되는 유물은 당연히 가야와 신라의 흔적들이다. 북정동 고분군에는 아직 복원되지 못한 수많은 고분들이 즐비하다. 산기슭에 솟은 봉우리의 능선 부분은 대형 분묘가 있고, 그 아래로 수많은 작은 고분들이 있다. 여기서 발굴된 많은 유물들을 전시한 공간이 바로 고분군 아래 위치한 양산시립박물관이다. 



부부총 내부를 재현한 모습

순장자가 함께 묻혀있는 부부총 내부 모습


양산시립박물관의 유물은 5C 중반에서 6C를 넘는 것들인데, 이 중에서 부부총과 금조총이 유명하다. 부부총은 부부가 함께 묻힌 무덤으로 금관을 쓴 주인과 더불어 순장자까지 누워 있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두고 있다. 



부부총 주인이 쓴 금관


금조총은 글자 그대로 한 쌍의 금으로 만든 새의 발이 발견되었다고 붙여진 무덤이다. 금조는 무슨 새의 발일까? 왜 새의 발 모양만 만들어 무덤에 넣은 것인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런가 하면 박물관에 전시된 토기류는 보기에도 가야와 신라의 각각의 독특한 형태를 단번에 알게 해 준다.


박물관을 관람하는 내내 왁자지껄하다. 초등학생들이 대거 몰려왔는데, 숨은 보물찾기를 하는 모양이다. 그들이 찾고자 하는 보물은 전시실의 유물 사이사이에 감춰진 작은 인형류들이다. 아이들이 박물관을 돌면서 이런 숨겨진 인형들을 찾는 게 과제로 보이는데, 여기저기서 찾았다고 떠드는 통에 박물관이 살아있다. 여기다 함께 온 부모들이 보물을 찾은 아이들의 환호에 맞장구를 치느라 더 시끄럽다. 이런 인형찾기 과제는 누구 아이디어인지 참으로 유익해 보인다. 박물관에서 숨겨진 인형들을 찾으려면 꼼꼼히 유물을 살필 수밖에 없고, 그러면 자연학습까지 이어지게 되며, 부모들과 함께하는 자리니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부부총의 주인이란 설이 제기되기도 햤던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 초상

양산시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김유신 장군의 어머니 만명부인 초상


생기 넘치는 박물관에서 부부총의 금관을 쓴 주인공들의 정체가 무척 궁금하다. 이들의 정체만 알 수 있다면 양산 지역의 역사도 더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탓에 발굴된 유물 전체를 일본으로 가져가는 통에 정체를 밝힐 실마리가 사라져 아쉽기 그지없다. 



현재에도 공사 진행중이다


북정리고분군 위에서


 박물관을 나서면 바로 고분군으로 이어진다. 봉분이 사라진 고분들을 다 복원하게 되면 어떤 모습으로 바뀌게 될까? 적어도 고령가야 고분군처럼 온 산이 무덤으로 덮이는 광경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면 이곳의 고분군은 가야고분군으로 불러야 할까, 아니면 신라고분군으로 불러야 할까? 

 

/ 예성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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