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의 쇠퇴는 정치적 문제이다. 흔히들 지역이 쇠퇴하는 것은 사회적 문제, 문화적 문제 등으로 제한하지만 한국의 독특한 정치적 구조에서 지역 쇠퇴가 발생한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것은 결국 지역 쇠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정치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명제와 연결된다.
한국의 정치는 어떠한가? 인구 면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수도의 인구 비율은 18.9%에 달하는데, 이는 미국(0.2%), 독일(4.4%) 등 주요 선진국은 물론 집중도가 높다는 일본(13.4%)보다도 압도적으로 많은 수치다. 이러한 인구 집중이 수도에 심화될수록 부동산 폭등과 출산율 저하, 지역의 위축 등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구 집중은 결국 지역의 쇠퇴뿐 아니라 국가 전체 경쟁력의 한계를 노출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정치 구조 면에서도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중앙권력이 지나치게 비대한 상황이다. 주요 정치 선진국들(미국, 독일, 스위스, 호주, 캐나다)이 연방제를 택하거나 중앙집권제일 경우에도 지역에 대폭 권한을 이양한 것과 대조적이다. 그간 우리의 발전 프레임은 ‘성장축 모델’이라는 중앙집중 형식을 취해 왔다. 정치적으로는 중앙을 해바라기처럼 바라보며 베푸는 자원을 배분받기 위해 경쟁하는 ‘향앙(向央) 정치’에 머물렀고, 그 결과 지역의 자생성과 자주성은 위축되었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역 시민사회가 20여 년간 노력해 왔지만 지역 쇠퇴의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지역 위축의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지역 주권이 강화되는 정치적 틀의 대전환이 절실하다. 혁신의 방향은 ‘지역 소멸에서 소생으로, 단극 체제에서 다극 체제로, 중앙집중에서 분권화로, 향앙 정치에서 탈앙(脫央) 정치로, 단방제에서 준연방제로’의 프레임 전환이다. 새로운 지향점인 다극적 탈중앙화와 준연방제는 지역이 스스로 자주·자강하여 대한민국 전체를 다시 도약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를 추진할 수 있는 틀이 바로 지역정당이다. G7과 같은 주요 선진국에서는 모두 지역정당이 합법적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불법이다. 2023년 10월 지역정당 설립을 금지한 정당법 전국정당 조항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결정으로 지역정당 합법화가 무산되고 말았다. 지역정당을 허용하면 지역주의를 심화하고 지역 간 이익갈등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지역정당은 지역주의와는 거리가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지역주의의 문제를 감소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다. 중앙의 자원이 지역에 배분된 상태에서 지역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조건이 보장된다면 선의의 경쟁 외에 지역 간에 다투어야 할 이유가 없다. 중앙 중심의 정치체제에 대한 개혁을 위해 지역정당 간의 연대와 연정이 자연스럽게 된다. 이에 따라 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지역별 정치 지향의 갈라짐도 최소화될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당법 하에서 지역정당이 가능한 방안 중의 하나는 바로 ‘플랫폼 정당’이다. 지역에서 지역정당을 추진해 온 정치결사체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네트워크화와 연합을 이루어 정당법의 기준에 따른 전국적 플랫폼 정당을 설립한다. 이러한 플랫폼 정당은 지역의제를 다루는 지역정당 역할과 함께 정당법 개정과 준연방제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정치세력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유럽 선진국에서 보편화된 바와 같이, 기초지자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상위 단위가 개입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보충성의 원리’에 의해 풀뿌리 민주주의의 발전의 토대가 갖추어질 것이다.
플랫폼 정당은 이러한 원리를 준수하며 지역 문제를 지역 스스로 해결하는 정치를 가능케 할 것이다. 이미 전국 곳곳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태동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 주권자의 목소리를 담은 지역정당이 출현해 ‘탈앙(脫央)’을 통한 지역 소생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안현식 / 동명대 교수 · 부산시민의제포럼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