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날’의 의미를 기리는 ‘설 명절’ 쇠기의 전통은 근대기를 거치며 수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럼에도 그 전통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인의 ‘집단무의식’이 저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설’이라는 단어는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궁금하다.
근대 이전의 문헌에는 ‘설’의 어원 설명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삼국·고려·조선 시기의 기록에는 ‘설’을 세시풍속·제사의 의례로 묘사할 뿐, ‘설’이라는 어휘의 어원을 따로 풀이하는 서술은 사실상 보이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설날 어원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라고 할 만한 것은 20세기 중반 이후 세시풍속과 옛말 연구가 체계화되면서 비로소 생겨났다 볼 수 있다. 그러나 설날의 ‘설’에 대해서는 정설이 하나로 합의된 적이 없고, 여러 어원설이 공존하는 상태이다.
지금까지 제기된 주요 학설들을 범주별로 정리해 보면, 먼저 1960~80년대에는 ‘슬프다’ ‘서럽다’라는 뜻에서 온 ‘섧다/설다’ 어근설, “낯설다의 어근 ‘설’에서 나왔다”는 ‘낯설다/설다’ 어근설, “삼가다, 조심하다를 뜻하는 옛말 ‘섧다’에서 왔다”는 ‘섧다/삼가다’ 어근설이 제시되었다. 한편으로 “설은 새해의 첫머리를 뜻한다”는 의미로 ‘선(先)날’(新날)이 음운 변화를 거쳐 ‘설날’이 되었다는 의미 중심의 설명도 제기되었다.
이후 1980~2000년대에는 어원학 관점의 ‘살(나이)’ 계열 가설이 부상했다. 즉, 설날은 “사람이 ‘한 살’을 더 먹는 날”이니 ‘살(나이)’의 옛 형태가 ‘설’이어서 ‘설/살’의 교체가 나타난다는, 설날을 “나이 단위의 경계점”이라는 한국적 나이 관념과 연결시키는 해석이 등장했다.
이상의 여러 해석 가운데 특히 주목한 것은 초기 연구에서 제시된 ‘슬프다’ ‘서럽다’라는 뜻에서 온 ‘섧다/설다’ 어근설이다. 이 해석은 널리 알려진 근대기 국문학자 양주동의 주장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우리 민족은 새해 첫날을 슬프고 비통한 감정 속에서 맞이하는 민족이 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있나? 희망찬 새해를 슬프고 비통한 감정으로 맞이하다니?
그의 이런 해석의 근거는 삼국유사 기이(紀異)편 사금갑조(射琴匣條)의 기사에 있다. 내용인즉, 신라 21대 소지왕이 왕녀와 내통하던 궁중 승려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한 사건 이후에 정초(正初) 보름까지 매사에 삼가던 풍습을 달도(怛忉:근심 혹은 슬퍼하다)라고 했으니 ‘설날’은 ‘슬픈 날’이라는 해석이다. 이후 이 해석은 ‘서러운 날’ 설(說)로, 나아가 ‘낯설은 날’ 설(說)로 변형되며 전개되었다.
대체로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변고가 있지 않는 한, 새해를 희망찬 마음으로 맞이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리고 새해를 낯설거나 어색한 감정 속에서 맞이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기대와 희망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되 방심 말고 새해를 설계하라는 실용적 의미가 달도의 풍습에 담겨 있다. 양주동 계열 해석은 그런 달도의 의미를 ‘설날’의 어원 해석에 그대로 적용하는 문제를 보인다. 달도 풍습의 경계와 근신의 의미와 설날의 어원과 그 의미 해석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처럼 달도 풍습의 실용적 의미와 설날 어원의 언어사적 기원을 동일시하는 것은 전형적인 ‘의미 유사성 착각’에 따른 오류이다.
정승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