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가족과 함께 쇠었다. 입춘이 지난 지 13일 만이라 예년보다 훨씬 포근한 ‘설날’이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병오년(丙午年)의 시작은 바로 이때부터이다.
‘설날’은 늘 입춘을 중심으로 앞뒤 보름(15일)을 벗어나지 않는다. 입춘은 전통역법인 ‘태음태양력’ 체계 속의 양력으로 정한 절기이므로, 설날 또한 달의 위상변화에 따른 날짜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설날’은 한 해 가운데 입춘과 가장 가까운 음력 초하루(朔日)로 정해진다. 이처럼 우리의 ‘설날’은 인간이 비로소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인지하는 시점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활기를 되찾는 때, 인간 또한 체감상 한 해의 시작을 느끼게 되는 때가 바로 ‘설날’인 것이다.
이에 비해 오늘날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서양식 양력에서 새해 시작을 1월 1일로 정한 의미는 여러 가지로 애매모호하다. 천문학상 새해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동지도 아니요, 새해가 시작된 뒤에도 약 1개월가량 계속 더 추워지니 인간의 실제 생활 감각과도 괴리감이 크다.
이는 본래 자연의 순환에 근거한 설정이라기보다, 고대 로마제국과 기독교 교회 체제에 맞추어 형성된 시간 구조를 대중에게 강제한 신본주의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고대 로마에서는 서기전 2세기 무렵부터 집정관의 취임일이 1월 1일로 정해지면서, 정치·행정상 한 해의 시작이 1월 1일로 굳어졌고, 이를 율리우스력에서 공식화하였다. 그리고 이후 이 전통이 기독교 종교관과 결합하면서 오늘날의 서양 양력 체계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 우리의 ‘설날’은 인간이 몸으로 체감하는 자연의 순환을 삶의 질서 속에 조화롭게 녹여낸 인본주의적 관념의 산물이다. 이는 특정 권력이나 종교적 권위에 의해 강제된 제도가 아니라,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며 축적해 온 경험과 지혜가 빚어낸 시간 인식의 결과인 것이다.
이런 고매한 ‘설날’의 의미를 기리는 ‘설 명절’ 쇠기의 전통은 근대기를 거치며 수차례의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설 명절’을 온전히 누리게 된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10년 조선총독부는 ‘설날’을 의도적으로 ‘구정(舊正)’이라 격하해 부르며 주변화했고, 서양력 1월 1일만을 공식적인 ‘설’로 인정하는 정책을 통해 ‘설’ 쇠는 풍습을 억압했다.
해방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제1공화국 이승만 정부 역시 ‘음력설’을 쇠는 관습을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폐습으로 규정하며 이를 억제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의 ‘음력설’ 쇠는 풍습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오랜 억압 속에서도 이어져 온 ‘집단무의식’적 관행의 힘이 결국 제도를 움직였다. 마침내 1985년, ‘민속의 날’이라는 다소 어정쩡한 이름으로나마 하루의 공휴일이 지정되었고, 이어 1989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설날’이라는 고유의 이름을 되찾으며 사흘 연휴의 공휴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모든 민속이 그러하듯 ‘설날’의 풍속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모습을 달리해 왔다. 오늘날 바쁜 일상과 업무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설날’ 연휴는 오랜만에 주어지는 휴식이자 여행하기 좋은 시간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역시 ‘설 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귀성객들의 행렬은 전국의 고속도로를 주차장처럼 만들어 놓았다.
정승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