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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 (40)
  • 편집국
  • 등록 2022-12-14 13:4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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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기 암 환자와 찐빵

진주 수복빵집에 줄을 선 고객들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날벼락을 맞은 사람을 자주 본다. 누가 봐도 맑은 하늘에 날벼락인데 문제는 날벼락을 맞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이다. 

“선생님, 전 아파서 병원에 간 것이 아닙니다. 건강검진차 갔다가 내시경검사에 위암 4기라니요. 선생님이면 믿겠습니까?”

이런 분을 종종 만난다. 이분은 위암 말기라 수술은 아예 해보지도 못하고 항암제 치료만 받고 온 것이다. 이분은 진단받고 5개월을 살았는데 죽기 전날까지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아 안타까웠다. 



최근에 만난 B 씨는 42세로 작년 1월 구토 증세가 심해 종합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보니 간암 말기였다. 병원에선 특별히 해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치료를 포기하기엔 나이가 젊어 서울의 유명 3차 병원에 가서 항암치료도 하고 지방의  C 대학병원에서 방사선치료도 받았다. 하지만 말기 암인지라 어떤 치료도 효력이 없었다고 한다. 


“C 대학병원에서 호스피스 병원을 알아봐주겠다고 했어요. 하지만 아들에게 차마 호스피스 병원으로 가겠느냐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자식이라곤 아들 하나뿐이거든요.” 

어머니의 아픔이 전해져왔다. 

“자녀를 왜 하나밖에 낳지 않았습니까?”


1970년대 말엔 ‘자녀 하나 낳기’를 적극 권장하여 아들 하나만 낳고 정관수술을 했다고 한다.

입원 시에 보니 환자는 극도로 쇠약해져있고 식은땀을 흘리며 호흡곤란이 있었고 정신적으로 공황상태처럼 보였다. 다른 가족은 없는지 물어보니 혼기를 놓쳐 아직 독신이었다.


치료해 볼 수 없는 말기 암이지만 그렇다고 금방 죽는 것이 아니라서 곁에서 지켜보는 가족들의 피를 말린다.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통증을 경감해 주고 영양을 공급해 주며 정서적으로 도움을 주는 일이다. 그리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게 도와주는 것이다. 


입원 다음날 아침에 보니 조금 안정되어 호흡도 많이 편해졌다. 환자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제가 매일 아침 9시에 회진을 옵니다.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부모님이나 가족, 친척과 즐거웠던 기억을 하루에 하나씩 제게 말해줄 수 있겠습니까?”

“그, 그런 것은 왜 묻습니까?” 

환자는 빨대로 물을 한 모금 삼키고 말했다.

“즐거웠던 순간을 기억해 내면 몸 안에서 엔돌핀 등 좋은 호르몬이 분비되어 회복이 빠르고 링거나 약물의 효과가 더 커져 하는 말입니다. 수술하고 회복 기간이 석 달 걸리는데 이 방법을 쓰니 한 달 만에 퇴원한 경우도 있습니다.” 


다음날 만나니 이분은 창문 밖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기억이 납니까?”

“할아버지, 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기억이 없고 외할머니도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외할아버지는 98세인가 백 살 가까이 까지 사셔서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외갓집이 부여(충남)이었는데 외할아버지가 저를 데리고 장터에 가서 달걀을 사주셔서 먹은 기억이 납니다.”

환자는 이 말을 하면서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이야기를 하면 숨이 가빠 말을 쉬어가며 하였다. 

“하루에 좋은 기억 하나만 이야기하면 되지요?” 

그는 눈물을 닦으며 웃으면서 말했다.


다음날 가니 또 이야기를 해주었다. 

“큰아버지 집이 괴정에 있었는데 아주 잘 살았습니다. 큰집에서 바나나를 먹은 적이 있어요. 제가 초등학교 3~4학년 때였는데 당시에 작은 바나나 하나가 천 원~2천 원 정도로 아주 비쌌습니다. 큰집에는 제 또래 사촌이 있었지요. 바나나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명절이나 제사 때가 늘 기다려졌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가보니 간밤에 호흡곤란이 심해 3차 병원(대학병원급)으로  가고 없었다. 


2주 후에 이분이 다시 입원했다.

“3차병원에 가서 복수도 빼고 흉수(폐에 차는 물)도 빼고 호전되어 죽도 조금씩 먹습니다. 다른 시설 좋은 요양병원도 있는데 아들이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이 있다며 이병원에 꼭 가자고 하네요.”

보호자와 말을 해보니 모친은 거의 탈진한 상태이지만 부친은 어떠한 순간에도 아들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승에서의 시간을 어떻게든 이어가려고 노력하는 기색이 역력하였다. 이번에는 눈과 복부와 전신에 황달이 심하게 나타났다. 

“어릴 때 아버지가 찐빵을 사주셔서 그 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찐빵을 한번 먹어보았으면 좋겠어요.” 


진주 수복빵집의 단팥죽 수프를 끼얹은 찐빵 맛이 50년 전 그대로이다.


고향 진주에는 ‘수복빵집’이라는 유명한 찐빵집이 있는데 내가 중학교 때 먹었던 가게가 50년이 지난 아직도 그때 그 장소에 그 맛을 변치 않고 있다. 주인이 연로하여 지금은 부인과 자녀가 운영하는데 먹어보니 중학교 때 먹던 바로 그맛이다. 이 집의 찐빵 맛을 못 잊어 미국과 독일, 브라질 등에 이민갔던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찐빵을 사서 월요일 출근하여 병실에 가보니 찐빵을 먹고 싶어 하던 간암 환자는 일요일 밤에 3차 병원으로 가고 없었다. 


죽음을 막지는 못하지만 죽음을 편안히 맞이하도록 돕고 싶은 것이 요양병원 근무자들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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