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살을 에는 추위를 헤치고 홍매화가 고요히 꽃망울을 열었다. 얼어붙은 땅 위에서 불쑥 고개를 든 붉은 빛은, 인고의 시간이 결코 공허하지 않았음을 말없이 보여준다. 봄은 그렇게 소리 없이 먼저 도착해, 우리에게 이른 소식을 건넨다. 아직 바람은 차갑지만, 그 속에 스며든 따뜻한 기운은 계절이 이미 방향을 틀었음을 은근히 일러준다. 해마다 어김없이 이 작은 꽃이 먼저 피어 우리에게 봄을 알리듯, 자연은 늘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건너온다. 돌이켜보면 동지와 소한, 대한으로 이어지는 매서운 추위를 다 지나 벌써 내일모레가 입춘이다. 가장 깊은 겨울의 고비를 넘어서야 비로소 새봄의 문턱에 선다는 이 이치가 새삼스럽게 마음에 와닿는다.
입춘은 단지 달력의 한 절기가 아니라, 얼어 있던 대지와 우리네 삶의 결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하는 신호이다. 아직은 꽃보다 바람이 차갑고, 햇살보다 그늘이 길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미 봄을 향해 한 발을 내딛고 있다. 입춘 즈음부터 비로소 한 해가 시작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동지가 천문학적으로 한 해의 시작점이라면, 입춘은 인간이 체감으로 봄을 맞이하는 인문학적 한 해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예로부터 입춘은 단순한 절기를 넘어 또 하나의 ‘작은 설’로 여겨 동지와는 다른 의미의 ‘새해맞이’ 의례들이 행해졌다. 전통시대에 나라에서는 입춘 무렵 선농제(先農祭)와 연계된 농경 제사를 지내며 한 해 농사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했으며, 민간에서는 ‘입춘대길(立春大吉)’, ‘만사형통(萬事亨通)’ 같은 글귀를 적은 춘첩(春帖)을 대문에 붙이어 새해의 안녕을 빌었고 이러한 전통은 아직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우리의 전통역법, 소위 음력(실상은 태양태음력)은 인간이 체감으로 느끼는 한 해의 시작점 즉, 입춘을 새해의 출발점으로 맞춘 인본주의적 역법이다. 다만 설날과 입춘이 든 날짜가 정확히 겹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입춘 날짜는 태양력에 따라 결정되고 달력의 날짜는 태음력 즉 달의 위상(位相 : 위치에 따른 모양)에 맞게 정해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설날이 입춘과 너무 멀어져서는 새해 첫날의 의미가 무색해질 것이니 특별한 설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 입춘과 가까운 음력 초하루를 새해의 시작, 설날로 정해야 했다. 즉 입춘이 정월 초하루를 앞뒤로 보름(15일) 넘게 벗어나지 않도록 조정하는 것이다. 이를 가능케 하는 장치는 중기(中氣)이다.
사실 흔히 말하는 24절기는 정확히는 12개의 절기(節氣)와 12개의 중기(中氣)로 나뉜다. 중기란 중심이 되는 절기 즉 해당 달의 기준이 되는 절기이다. 음력 정월의 기준이 되는 중기(中氣)는 우수(雨水)이며, 따라서 음력 정월에는 반드시 우수(雨水)가 포함되어야 한다. 이 원칙을 따르면 입춘은 자연스럽게 정월 초하루를 중심으로 앞뒤로 보름을 벗어나지 않게 된다. 결국 설날은 늘 입춘 즈음으로 정해진다는 말이다.
올해 설날은 양력으로 2월 17일이다. 입춘이 2월 4일이니 입춘이 지난 후 13일 만이다. 예년에 비해 상당히 따듯한 설날을 예상해 본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병오년(丙午年)의 시작은 이때부터이다.
정승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