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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99) 최상의 언어
  • 편집국
  • 등록 2026-01-14 12: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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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길(1코스), 성산일출봉 일출

 

일본에서는 노인의료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증가하자 노인 환자의 병원 입원을 억제하고 의사, 간호사, 재활치료사로 구성된 의료진을 집으로 보내 왕진 의료를 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1960년대 시골에서 가방 하나를 들고 먼 마을까지 걸어 다니는 왕진 의사를 본 적이 있다. 필자도 특별한 왕진 경험이 있어 여기에 적는다.


필자가 종합병원 산부인과 과장으로 근무한 1988년 때의 일이었다. 30대의 한 남자가 병원에 와서 통사정을 하며 왕진 분만을 요청했다. 외래환자를 계속 진료해야 했기 때문에 왕진 분만은 안 된다고 말했다. 

“산모를 데리고 병원으로 오세요.” 

“선생님, 산모가 병원으로 올 형편이 도저히 안 됩니다. 제발 우리 집에 같이 가셔서 분만을 좀 도와주십시오.”

그분이 너무 간절히 호소하는지라 왕진을 가게 되었다.




간단한 분만 세트를 준비하여 간호사와 구급차에 탔다. 뒷산 달동네 언덕길을 구급차는 1단 기어를 놓고 한참이나 올라갔다. 길이 좁아져서 차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하자 차에서 내려 남자를 따라 좁고 가파른 골목길을 걸었다. 


산언덕 오르막의 마지막 집이었다. ‘세상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문도 없이 가마니 거적으로 가려놓은 방 입구에 들어서니 어두웠다. 신발을 벗고 좁은 방안에 들어서니 뭔가 썩는 냄새가 코를 찔러 토할 것만 같았다. 겨우 진정하여  방 안에 들어섰다. 


희미한 어둠 속 좁은 방안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여성이 보였다. 어둠 속에 차츰 적응이 되어 관찰해 보니 산모였다. 나는 다가가 무릎을 꿇고 자세히 살펴보았다. 산모는 혼수상태로 식물인간 상태였고, 8개월쯤 되는 태아의 다리와 엉덩이가 시커멓게 변색된 채 벌써 질 밖으로 빠져 있었고 어깨와 목과 팔이 빠지지 않고 걸려 있었다.


산모가 뇌출혈로 3차 병원에서 뇌수술을 했고, 그 후에 가망이 없다고 해서 퇴원하여 여태까지 집에 있었다고 한다. 뇌출혈로 수술을 할 시기 직전에 아마 임신이 되어 환자도 남편도 임신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산모는 식물인간 상태였지만, 배 안의 태아는 계속 자랐던 것이다.


‘하느님, 제발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무릎을 꿇고 소독 장갑을 끼고 태아 분만을 시도하였다. 사산아인데 여아였다. 분만 후 출혈이 심하면 극도로 쇠약한 산모가 사망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다행히도 태반까지 큰 출혈 없이 잘 빠져 나왔다. 역겨운 냄새로 너무 메스꺼워 몇 번이나 울컥하고 토할 것 같았다. 


태반까지 빼낸 후  마지막으로 질 소독을 하고 분만기구를 챙겨서 일어났다. 손으로 거적을 걷고 움막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쳐다보니 아주 맑고 깨끗하였다.


아, 이렇게 푸르고 맑은 하늘은 본 적이 없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이런 식으로 생을 이어가는 사람도 있구나! 병원에 편안히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만 치료했지, 병원에 올 수 없는 훨씬 더 힘들고 훨씬 더 고통스러운 사람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지 않았던가. 지금까지 내가 누리던 행복이 얼마나 컸었는지 너무 모르고 살았구나! 아니, 여태 너무 과분하고 사치스럽게 살아왔구나 하고 느꼈다. 그 남자는 하느님이 보낸 천사였구나. 하느님, 당신의 과분한 사랑을 깨닫게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 끝나고 의식이 없는 산모를 보니 눈가에 눈물 한 방울이 맺혀 있었다. 식물인간 상태로 몇 달을 살았을 텐테 어떻게 갑자기 눈물이 나온 것일까? 이제야 생각하니 그 눈물은 식물인간 상태의 산모가 분만을 도와준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최상의 언어였다. 내가 좀 더 비위가 좋았더라면 산모의 그 눈물을 닦아주고 나왔을 텐데…. 왕진을 가지 않았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순간이었고, 의료에 대한 관념이 깨어진 하루였다. 




우리 주위에 아파도 병원에 오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이 있다. 병원에 올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의료도 있어야 진정한 복지가 아니겠는가! 우리나라도 병원에 올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한 의료에 그치지 않고 왕진 의료, 재택 의료가 가까운 미래에 일상화될 것을 기대해본다. 

노인들이 차가운 병실이 아닌 오랫동안 살아왔던 집에서 임종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병원과 지역사회가 긴밀히 협력하는 정책적인 장치가 절실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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