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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의 ‘상산마고당’ 변천사 - 3
  • 편집국
  • 등록 2026-01-06 11:3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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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고당 벽면과 지붕 외형을 중심으로

재송동 입암(선바위) 장군바위


3. 기우제와 마고당 


고문서가 아닌 모연문에서도 마고당의 실체에 대해선 ‘수백 년 전부터 있어 왔다’는 한 줄뿐이다. 그 외에는 중건하는데 시주하고 복받자는 내용과 시주자 명단이 적혀 있을 뿐이다. 그러다 지난 2025년 8월경 동래정씨 호장공파 해운대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던 ‘장산마고당기(萇山麻姑堂記)’가 발견돼 마고당 중건 당시 모습를 보여주는데 여기에서도 마고당이 언제부터 존재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없다. 단지 현재 장산에 있는 마고당 앞 안내판에만 ‘1714년 기우제를 지낸 것을 시작으로 마고 할미를 모신 제당을 세웠다’는 언급이 있다. 



마고당 안내판

물론 이 안내판 내용은 근거가 없는 엉터리다. 고문서에 따르면 1714년은 동면이 상,하로 분리된 해다. 그후 1764년, 재송동과 하4동(좌,중,우동, 해운대동)간 기우제를 놓고 비용 부담 등의 이유로 다툼이 일어나기 전까지 재송동 입암(立巖)에서 기우제를 지냈다. 다툼이 있은 후엔 관가에서 ‘입암 기우제는 재송동이 전담하고 하4동은 거행하지 않는다’고 조정해 주었다. 이때 하4동이 따로 지낸 기우제는 해운대 기우제라 했으며 그 장소가 마고당으로 추정할 뿐이다. 


만일 해운대 기우제가 1764년부터 재송동 입암 기우제와 별개로 이뤄졌고 그 장소가 마고당이라면 마고당에서 지낸 최초의 기우제는 1714년이 아니라 1764년 이후가 되어야 맞다. 


/ 예성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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