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하면 고문서와 함께 발견된 부산시립박물관 소재 ‘장산신당중건모연문’ 표지와 첫 장 (출처 : e뮤지엄)
4. 모연문에 나타난 마고당
기록에 따르면 장산의 상산마고당(이하 마고당)은 몇 번에 걸쳐 중건 및 보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1924년에 마고당을 중건한 이유는 모연문에 나타난 대로 당시 마고당이 노후되어 많이 허물어졌으며, 위로는 비가 새고 옆으로는 바람이 통하는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좌·중·우동의 여섯 마을(좌동 및 대천·장지·미포·오산·운촌마을)이 나섰다. 중건은 마을 주민들의 십시일반으로 이루어졌다.
모연문에 의하면 1924년경 마고당은 이미 벽면을 갖추고 지붕이 덮인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벽면은 당연히 돌로 쌓았을 것이고 지붕은 짚이나 인근에 많이 자라는 억새를 활용한 초가 형태라는 의견과 기와지붕이라는 의견이 공존한다.
그 이유는 ‘장산마고당기’에 나타난 중건 후 마고당을 언급한 부분에서 비롯된다. ‘장산마고당기’에서 ‘검소하게 초막(廬 - 동래정씨 호장공파 해운대문중에서 보관하고 있던 ‘장산마고당기(萇山麻姑堂記)’ 원문에 구지위신건제려(舊地爲新建齊廬 : 옛 터에다 초막으로 새로 짓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려(廬)는 오두막, 농막집을 뜻하는 한자어다.)’으로 다시 지었다고 하니 1924년 마고당 중건은 허물어진 벽체의 돌을 새로 쌓고 지붕을 다시 초가로 입히는 선에서 행해졌을 것으로 보는 의견이 있다.
반면 초막(廬)이란 표현은 건물이 소박한다는 뜻으로 보아야 하고 실제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제당이나 사당은 기와로 지붕을 이었다는 사실로 볼 때 이미 기와지붕이다는 의견도 있다. 초막(廬)을 어떤 의미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마고당 지붕의 재질이 달라지는 것이다.
돌벽에 초가지붕(왼쪽)과 기와지붕(오른쪽)이 각각 얹힌 1924년 중건 이전의 마고당 예상 모습 (ChatGPT)
장산신당중건모연문 (1924년)
<한문원문 (발췌)>
<萇山神堂重建募緣文>
萇山本郡內鉅大名山也 自數百年前 山下左右中三洞 創建神堂于靜寂處 每年正六兩月 三洞致誠行祭 凡百有求 必禱於此堂 壽我福我 驅?鬼而遠之 五穀豊熟 神眞靈也矣。?乎今日 該堂年久?傷 上雨傍風 三洞同意必重建乃己 而所乏者金錢也。?將草胡之文 幸望檀越之施 伏乞僉君子 不惜一銖之塊 以成十匙之飯 庶斯堂永傳不朽 其於求福事神之道 千萬幸甚焉.
中元甲子六月日 (以下諸人芳名省略)
(※ 실제 문서는 이보다 더 길고 조세·찬조록·제수금식리록까지 포함. 출처 : 해운대구청)
<한글 해석>
장산(萇山)은 본군(本郡) 안에 있는 거대한 명산이다. 수백 년 전부터 산 아래 좌동·우동·중동 세 마을에 조용히 신당(神堂)을 세워 놓고, 매년 정월과 유월 두 차례 세 마을 사람들이 함께 정성껏 제사를 올리며, 바라는 바가 있으면 반드시 이 신당 앞에 빌어 복을 구하고 우리에게 수명을 주며 우리에게 안녕을 보장하고, 또한 액귀(厄鬼)를 물리쳐 멀리 쫓아내고 오곡이 풍성하게 익도록 하였으니, 이 신(神)은 참으로 영험하다.
오늘에 이르러 이 신당은 해가 오래되었고 많이 허물어졌으며, 위로는 비가 새고 옆으로는 바람이 통하니, 세 마을 사람들이 뜻을 같이하여 반드시 중건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금전이 부족하다. 이에 초호(草胡 : 필명 혹은 작성자)로써 이 문을 지어 단월(檀越 : 기부자)의 보시를 청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여러 군자들은 조그만 돈 한 푼이라도 아끼지 말고 십시일반(十匙一飯 : 여러 사람이 조금씩 모아 큰일을 이루듯) 하여 이 신당이 썩지 않고 영원히 전해지게 한다면, 복을 구하고 신을 섬기는 도리에서 천만다행이라 여기노라.
그렇다면 1924년 중건한 이래 현재의 마고당은 언제 어떻게 손을 본 모습일까?
/ 예성탁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