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 폭포사 전경
6. 1986년 이애자 보살의 중건
현재 장산 마고당과 천제단 제의(祭儀)는 매년 음력 정월 3일과 6월 3일 두 차례 행해진다. 정월에 행하는 제의는 전염병 예방과 각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하고, 6월에 행하는 제의는 풍해·충해·병해 등 삼재를 막고 풍어와 풍농 등 기풍을 기원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제의는 장산 일대의 운촌·중동·미포·장지·오산·좌동 등 여섯 개 마을에서 윤번제로 모셨으나, 1980년대부터는 여섯 마을의 동장들이 회의를 거쳐 좌동에서 일임하도록 하여 좌동에서 전담하였다. 그 후 1996년까지는 좌동 마을 주민을 대신해 폭포사 주지가 망제 형식으로 제의를 대행해 왔다. 1997년 장산신당보존관리위원회[2010년 6월 장산향토문화보존사업회로 개칭]가 결성되면서 현재는 장산향토문화보존사업회에서 제의를 주관하여 모시고 있다. <출처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신앙사전(마을신앙 편)>
마고당 아래 위치한 폭포사는 1980년경부터 1996년까지 좌동 주민에게 위임받아 마고당제를 맡아 지낸 적이 있다.
그래서 사실을 확인하고자 6개월간 주지스님과의 만남을 시도했지만 만나지 못하다가 지난 10월 5일 추석을 앞두고 마고당에 올라 마고할미에게 ‘마고당 연구가 잘 이루어지도록 도와주십사’ 기도를 올린 후 하산하는 길에 그야말로 바로 주지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실로 마고할미의 도움이 아닐 수 없다.
마고당을 내려오면서 폭포사에서 만난 정민 주지스님은 현재의 마고당이 1986년 대보수를 한 모습이라 했다. 마침 1986년은 아시안게임이 열리던 해였고 또 폭포사 대웅전을 짓던 때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고 덧붙였다. 당시 폭포사 주지스님(현 주지스님의 부친)에게 염불을 명받아 제에 참석했던 지금의 주지스님(당시 20대 초반)은 마고당 건물에 대해서 비교적 상세하게 알고 있었다.
또한 1986년부터 1988년까지 폭포사 대웅전을 짓는 동안 반여동에 살았던 이애자 보살이 대대적인 마고당 중건에 나섰다고 한다. 현재 마고당 바닥에 깔린 돌계단과 기와지붕 등은 모두 이 보살이 20여 명의 인부를 동원해 건축자재를 운반하고 리모델링한 결과라고 밝혔다.
정민 주지스님에 의하면 마고당 지붕은 기와였으며 벽은 돌담이었다고 했다. 당시 마고당 건물을 비롯해 요사채(부속건물)도 있었는데 정월에 제를 위해 마고당에 올라가면 지독하게 추운 날씨라 요사채에서 잠시 몸을 녹이곤 했었는데 돌벽 사이 구멍이 ‘숭숭’난 틈으로 바람이 ‘쑹쑹’ 들어왔다고 하면서 그래도 바깥보다는 한결 따듯했다고 전했다.
그의 기억을 종합해 보면 80년대 초중반의 마고당은 돌로 쌓은 벽체에다 서까래 천장에 기와지붕를 입힌 건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1924년 마고당을 중건할 당시에는 돌벽을 쌓아 그 위에 초가나 기와를 올렸고, 그 후 1952년 지붕이 탄약고 폭발로 날아든 파편에 불타 버리는 바람에 지붕을 고친 것으로 보인다. 1952년 화재 시 한 주민이 어렵사리 군부대 허가를 얻어 마고당 지붕을 고쳤는데, 이때 불탄 초가나 불탄 기와 대신 새로 기와를 얹은 것으로 추정된다.
군부대 초소가 있었던 장산 폭포사 아래 심우정(왼쪽)과 마고당 부속건물
그러면 벽돌로 된 건물 벽체는 누가 새로 쌓은 것일까?
이를 알기 위해 무작정 다시 폭포사를 찾았다. 신기하게도 산신각을 헐고 새로 짓는 현장에 주지 스님이 보였다. 산신각이 낡아 비가 새는 통에 다시 짓기로 했다는 스님은 80년대 당시 마고당의 모습을 그림 그리듯이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시는 군부대 통제로 일반인들은 마고당에 접근조차 힘들었다. 현재 대천공원 위 체육공원 아래 심우정 정자 자리에 장산 출입구 및 군초소가 있었다고 했다. 그래도 마고당제 때는 출입이 가능해 천제단과 마고당에 올라 염불을 했는데, 주로 염불만 했던 터라 그때 당시 마고당제의 정확한 상황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밝혔다.
/ 예성탁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