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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의 ‘상산마고당’ 변천사 - 7
  • 편집국
  • 등록 2026-01-06 11:11:54
  • 수정 2026-01-06 11:4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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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마고당 벽면과 지붕 외형을 중심으로

7. 1986년 군사정권 시절 장산 통제선을 넘어


여기서 다시 주지 스님의 기억을 되짚어 보면, 이애자 보살이 군부대와 협의를 이끌어내 자그마치 20~30여 명의 인부를 동원해 자재를 옮겼다고 한다. 화물차로 초소 앞까지 자재를 운반한 뒤, 초소에서 마고당까지는 인부들이 자재를 짊어지고 직접 옮긴 것이다. 그렇게 하여 기존의 돌 벽체를 허물고 벽돌로 다시 쌓은 후, 콘크리트 천장 위에 기와를 얹어 지금의 모습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는 다시 이애자 보살을 언급하면서 반여동에 살았고 통이 매우 컸다고 한다. 또 이애자 보살이 “이름에 말 두(斗)자가 들어간 사람이 대통령이 된다”라고 예언해 당대에 화제가 되었고, 1주일 정도 마고당에 머물면서 치성을 드렸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 마침 폭포사 대웅전을 새로 짓던 때라 폭포사 기와와 동일한 회사의 제품을 사용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후 폭포사 대웅전과 마고당의 기와를 확인한 결과 문양과 모양이 서로 달라 같은 회사 제품으로 보기 어렵다는 게 황구 해운대문화원 전문위원 및 정진택 사무국장의 의견이다.)


 

마고당 기와 지붕

지금까지 1986년 실제로 대보수가 있었던 마고당 중건에 관한 기록은 없어서 마고당을 더듬는데 몇 가지 의문이 있었다. 특히 ‘1924년 중건 이전 마고당 벽면’과 ‘1952년 보수 시 지붕’에 대해서는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러다 폭포사 주지스님과의 면담에서 드디어 그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최초 마고당이 지어지기 전의 모습은 건물이 아닌 단순한 기도처였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그러다 돌벽에 초가 또는 기와를 입힌 건물의 형태를 갖춘 마고당사가 지어졌고, 이 건물이 오래되어 허물어지고 비가 샐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1924년 중건이 이루어졌고 허물어진 돌벽을 새로 쌓고 그 위에 지붕을 올린 초막(廬)이 등장한 것이다. 그 후 1952년 탄약창 폭발사고로 마고당사가 불에 타자 한 주민이 나서 보수에 나섰는데 이때 지붕을 기와로 입힌 것은 확실하다. 이후 1986년 기와를 새로 교체하고 돌 벽체를 허물고 붉은 벽돌로 쌓은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마고당 오른쪽 아래 산신제단(왼쪽)과 왼쪽 아래에 있는 마고당 샘물

하지만 1986년 마고당을 중건한 사실은 기록이 없다. 그래서 마고당 형태에 대해 혼선이 발생한 것인데 이제라도 마고당에 관련한 여러 자료에 1986년 마고당의 최종 중건 사실을 추가해야 한다.



/ 예성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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