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즈음 해가 짧고 밤이 길다. 오후 다섯 시만 되어도 벌써 어둠이 깔리기 시작한다. 동지가 코앞에 다가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동지(冬至).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겨울이 극점에 이른 때이다. 천문학적으로 보자면, 이때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그에 반해 밤의 길이는 가장 길며 태양의 고도 또한 가장 낮다.
이는 지구의 자전축이 공전 궤도면, 즉 태양의 길인 황도(黃道)에 대해 약 66.5도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동지가 곧 체감되는 겨울의 극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앞으로 더 매서운 추위가 남아 있다. 천문학적으로는 겨울의 절정에 도달했으되, 인간의 감각과 삶의 경험 속에서 느껴지는 겨울, 다시 말해 인문학적 의미의 겨울은 아직 그 정점에 이르지 않았다.

인문학적으로 보자면 동지는 아직 겨울의 끝이 아니다. 그러나 천문학적으로는 이날을 기점으로 낮이 다시 길어지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 동지는 겨울의 극점이자 동시에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경계의 시간이며, 따라서 동지는 곧 천문학적인 ‘설날’인 것이다.
실제로 동지는 ‘작은 설’이라 불리며 여러 세시의례가 행해졌다. 동지에 행하는 모든 의례에 단연 팥죽이 빠지는 법이 없다. 전통시대에는 격식을 갖춘 의례로, 팥죽을 쑤어 조상신과 가택신에게 먼저 올리는 동지고사(冬至告祀)를 지냈다. 의례를 마친 뒤에는 온 집안 식구와 이웃이 함께 팥죽을 나누어 먹었다. 또한 각 방과 장독대, 헛간 등에 팥죽을 뿌리거나 발라 액운과 잡귀를 막는 액막이 의례를 행하였다. 팥의 붉은 색은 음귀(陰鬼)를 쫓는 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팥죽에 든 흰쌀 경단 ‘새알’에도 나름의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팥죽 속의 ‘새알’을 먹어야 비로소 나이 한 살 더 먹는다고 했으니, 그것이 ‘새[鳥]의 알’처럼 생겨 ‘새[鳥]알’인줄 알지만 사실은 ‘나이 세(歲)’, ‘세(歲)알’이다. ‘세알’은 꼭 다음 해에 먹을 나이만큼 먹어야 한다고 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던 시절, 식탐 많은 어린 아동들이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세알’을 너무 많이 먹을까 봐 일부로 만들어 낸 말이리라. 그러나 어른들의 그런 신신당부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언제나 어른들 몰래 조바심치며 자신이 먹을 나이 수보다 ‘세알’을 더 먹곤 했다.
고도로 현대화한 지금은, 동지 팥죽을 집에서 쑤어 먹기보다 시장 죽집에서 사 먹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동지 하루 전날, 시장 죽집은 불이 난다. 일찍부터 서두르지 않으면 사 먹는 팥죽조차 맛보기 어렵다. 이렇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동짓날, 팥죽을 먹는다.
필자는 젊은 시절, 동지팥죽을 늘 입보다 얼굴로 먼저 맛보았다. 동짓날 이른 아침이면 어김없이 잠결 머리맡에서 ‘철푸덕’, ‘철푸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얼굴 위로 무언가 몇 점 떨어졌다. 지금은 돌아가신 모친께서, 자식을 위한 액막이 의례로 방 사방 모퉁이 천정 가까이에 뿌리신 동지팥죽의 파편이었다.
정승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