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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96) 서약서
  • 편집국
  • 등록 2025-11-17 18: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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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우담화


정민숙(69세. 56년생)은 신발장에서 신발을 신다가 넘어져 손목이 골절되었다. 노령자 중에는 신발 신다가 넘어지는 사람이 많아 신발장 앞에 의자를 두고 앉아서 신발을 신도록 권유한다. 노령자들은 골다공증이 있어 살짝 넘어졌는데도 골절이 쉽게 일어난다. 


회진할 때 인사하니 이 분이 말씀하셨다. 

“원장님, 제 몸 때문에 서글프지만 자식들 때문에 마음이 더 힘듭니다. 우리 아들이 서른여섯인데 올해 수능시험을 본다며 공부에 방해된다고 전화도 못 하게 해요. 우리 아들이 명문대 공대를 나와 석사, 박사학위까지 따고 대학교수가 되려고 한 교수 밑에서 청춘을 다 바쳐 노력했지요. 그런데 그 교수가 좋지 않은 일에 연루되어 사직하는 바람에 모든 희망의 끈이 떨어져 버렸어요. 공무원이나 공기업 입사시험에도 도전을 해보았지만 최종 면접에서 나이가 많아 번번이 떨어졌습니다.” 

17세, 18세에 미래에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하여 수능시험을 보아야 하는데, 서른여섯에야 수능시험을 친다니. 개인적으로나, 가정적, 사회적으로 얼마나 큰 손실인가!


“원장님, 우리 딸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딸이 고3이 되자 솔직히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퇴직하고 가계가 어려워 서울에 유학하거나 사립대학 학비는 대어줄 수가 없다. 부산의 국립대 중에 취업 잘 되는 학과를 골라 진학하도록 해라.’ 하루는 딸이 기뻐하며 찾아왔어요. 2012년 겨울이었지요. ‘엄마, 대통령 후보 박근혜 씨가 출산장려정책으로 자녀 셋 중 내년에 대학 입학하는 셋째에게는 4년간 학비를 대어준대요.’ 공약을 보니 정말 그런 약속이 있어 딸은 수도권 대학에 진학하였습니다.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막상 딸의 학비는 받지 못했어요. 정책추진과정에서 소득 하위계층부터 학비 장학금을 지급하다보니 우리에게까지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4년간만 학비를 대면 끝나겠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딸이 학업에 전념하지 않고 연예인이 되겠다며 3학년 초에 휴학을 하고 연극연기학원에 등록한 것이었습니다. 남편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 딸을 불러 ‘내가 언제까지 너 똥 닦아주어야 하느냐? 언제까지 도와주어야 하는지 네가 결정해라’고 하니 ‘앞으로 2년만 더 도와주세요’ 하였습니다. 남편은 딸과 함께 ‘아버지 OOO은 딸 OOO에게 향후 2년 동안 학비와 생활비를 지급한다. 2년이 지나면 졸업과 관계없이 경제적 지원은 종료한다.’며 서약서를 적었습니다.

딸은 연기학원에 나가서 며칠 배웠는데 자기가 얼마나 재능이 없는지 곧 깨닫게 되었지요. 수십 명의 연기학원 학원생 중에 자기보다 못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이중 극소수가 대학 연극영화학과에 진학한다고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도 졸업생 백 명 중 한 명 정도가 무대에 서는 스타가 된다는 것을 직접 깨달은 것이었지요. 딸은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빨리 깨닫고 졸업하자마자 영어학원에 강사로 취업하여 독립생활을 했습니다. 1년 후 공기업에 응시했는데 면접관이 ‘다른 사람은 봉사점수도 높고 인턴도 하고 석·박사학위도 있고 경력이 다양한데 자네는 아무 경력이 없는가?’,‘네 저는 졸업 후엔 집에서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해 생활전선에 바로 나와야 해서 인턴 같은 경력은 전혀 없습니다.’ 딸은 생존 의욕이 강하여 결국 취업했습니다.”


요즘은 학벌붕괴사회로 명문대를 나와도 직장잡기가 힘들다. 성장하는 시대가 아닌 쪼그라드는 시대인데다 반기업적 정책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던 좋은 기업들이 외국으로 빠져나가는 시대라 변변한 일터도 찾기 어렵다. 유럽의 기술 선진국 스위스에선 대학진학률이 20~30%로 실용적 직업교육이 대세를 이룬다고 한다. 고교 때  실무중심 기술교육을 받아 고교를 졸업하면 대다수의 청년들이 기술직 직장을 가지고 독립한다고 들었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감소하여 정부에서는 1도(道) 1국립대 정책을 장기적으로 추진한다고 들었다. 부산에 국립대 한 곳, 경남에 국립대 한 곳 등 각 도(道)에 국립대 한 곳을 남기고 모두 통폐합하거나 정리한다는 정책이다. 

1%의 과학인재가 전 국민을 먹여살린다. 어린이들이 마음껏 뛰어놀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심성을 기르게 하자. 중학교를 졸업하면 기술을 배워 18세, 19세에는 부모집에서 떠나 독립된 인격체로 재탄생하는 사회가 오길 기원해 본다. 그러면 자녀들도 귀중한 청춘을 낭비하지 않고 일찍 취업하여 독립하고, 부모도 한정된 자산을 자녀교육비로 탕진하지 않고 노후자금으로 쓸 수 있어 서로 상생하며 지속가능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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