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패치 아담스 (Patch Adams)>(1998)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유머의 힘을 믿은 한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가 연기한 헌터 패치 아담스(Hunter Patch Adams)는 젊은 시절 극심한 우울증으로 자살을 시도하다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뜻밖의 깨달음을 얻는다. 환자들 사이에서 웃음과 대화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패치는 의사가 되기로 결심하여 40세가 다 된 나이에 의대에 입학해 젊은 학생들과 함께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나 늘 기존의 질서와 충돌한다. 교수들은 “환자와 객관적인 거리”를 두라 말하지만, 패치는 오히려 환자들에게 다가간다. 병원 복도에서 패치는 피에로 복장을 하고 아이들과 장난을 친다. 수술실 앞에서 불안해하는 노인에게는 코믹한 몸짓으로 미소를 선물한다.
패치의 태도는 의대 당국의 눈 밖에 난다. “의학의 품위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퇴학 위기에 놓이지만, 그는 당당히 맞선다. “제가 한 일은 사람을 사랑한 것뿐입니다.” 결국 재판 끝에 패치는 의사 자격을 인정받는다. 졸업식에서 그는 붉은 코를 달고 연단에 올라 말한다. “우리의 임무는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입니다.”
<패치 아담스>의 진짜 감동은 의학의 본질을 다시 묻는 데 있다. 치료란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행위라는 것, 그리고 환자가 ‘환자답게’가 아니라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사의 존재 이유라는 메시지다.
패치 아담스의 이야기를 볼 때마다 필자는 자연스레 장기려 박사님(1911~1995)을 떠올린다. 1950년대 부산 피란 시절,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환자를 돌보던 그를 사람들은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렀다. 장 박사님은 ‘의술’보다 ‘인술’을 앞세웠다. “의사는 사람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영화 <패치 아담스>가 끝날 무렵, 패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해 말한다. “병을 치료하면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을 치료하면 결과가 어찌되든 반드시 승리한다.” 장 박사님도 평생 이 말을 실천한 분이었다. 두 사람의 공통된 처방은 ‘사랑’이었다.
어느 날, 병원에 오랫동안 입원해 있던 농부가 장 박사님에게 하소연을 했다. “선생님, 제가 당장은 돈이 없지만 나중에 꼭 벌어서 갚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사정 좀 봐 주세요. 내일 당장 모내기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병원에 묶여 있으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됩니다.” 농부의 말을 들은 장 박사님은 가만히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밤에 문을 열어 줄 테니 그 때 가세요.” 농부가 깜짝 놀라자 장 박사님은 웃으면서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마 병원비를 내지 않으면 퇴원을 안 시켜 줄 거예요. 그런데 돈이 없으니 도망을 쳐서라도 일을 해야 가족을 돌볼 수 있을 것 아닙니까.” 그렇게 말하고 농부에게 돈까지 쥐어 주었다. “얼마 안 되지만 차비나 하세요.” 농부는 고마운 마음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장기려 박사님은 평생 자기 집 한 채 가지지 못하고 병원 옥상 사택에서 살다가 1995년 12월 추운 겨울날 새벽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홍종 /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