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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살면서 한 번쯤 장산국을!
  • 편집국
  • 등록 2025-10-22 12:52:34
  • 수정 2025-10-23 10:2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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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지와 구지, 장지봉과 구지봉의 상징은?


해운대의 뿌리는 어디일까? 대다수 향토사학자들은 장산국(萇山國)에서 찾고 있다. 장산국의 근원은 또 어디일까? 본지에서 장산국을 연구하면서 장지(萇旨)마을임을 밝혀낸 상태다.

우1동 장지마을은 장산국의 근간이 되는 지명으로 장지를 품었다. 이는 장산국의 모태인 김해 금관가야의 근간이 되는 구지(龜旨)와 서로 맞닿아 있다고 보여진다.

김해 금관가야의 구지는 무엇인가? 삼국유사에 실린 가락국기 편을 보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다.

“여기에 사람이 있는가?”

구간들이 말하였다.

“우리들이 있습니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가?”

구간들이 대답하였다.

“구지입니다.”(중략)


위 구지에 대해선 해석이 다양한데 ‘거북이 형상을 한 곳’으로 풀이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으로 보인다. 거북이의 형상이 아닌 거북이의 가르침을 전파한 곳이되 외형적 거북이의 가르침이 아니라 ‘거북이를 수호신으로 모시던 부족의 가르침’으로 볼 수 있다. 예부터 부여를 비롯한 북방민족에서 거북이를 숭상하던 토템이 있었다고 역사서에서 전하고 있다. 거북이를 수호신으로 여기던 북방민족이 남으로 내려와 그중 일부 부족은 김해지방에 터를 잡았다. 


이들이 김해지방의 토착민들에게 북방민족의 우수한 문화를 전함과 동시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과정이 삼국유사 가락국기 건국사에 나타나 있다고 본다.

즉, 김수로왕 일행은 북방에서 철기문명으로 무장하여 이주해 왔으며 이들이 세운 국가가 금관가야이다. 김수로 일행이 거북이를 수호신으로 삼던 북방민족의 철기문명을 전한 곳이 구지봉이며 철기문명의 가르침을 구지라 칭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지와 달리 장지는 무엇인가? 장지 역시 앞선 철기문명으로 생겨난 이름일 것이다. 금관가야인들이 해운대에 도착해 가르친 기술이 바로 철을 다루는 야장술이며, 이로 인해 장지라는 명칭도 ‘철을 다룬다는 지혜의 가르침’을 의미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장지가 철을 다루는 기술의 가르침이라면, 구지는 거북이를 수호신으로 하던 북방민족의 가르침인 것이다.



육군 제53보병사단에서 바라본 해운대 그린시티


◇ 김해 구지와 달리 장산국 장지는 푸대접


장지와 구지란 명칭으로 볼 때 장산국과 금관가야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단 장지와 구지에 그치지 않고 장지봉과 구지봉으로도 연결되어 있어 두 국가는 더욱더 긴밀해 보인다.


그러나 오늘날 장지와 구지는 그 대접부터 다르다. 구지는 구지봉과 더불어 금관가야 발생지로서 존중받는 데 반해 장지는 점차 잊혀져 가는 중이며, 장지마을을 보호하던 장지봉의 존재는 이미 자취를 감추고 있는 실정이다. 해운대의 뿌리인 장산국의 근간이 되는 장지가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장산국의 터전인 장산의 역사성은 갈수록 사라지고 장산의 유래마저 장산국이 아닌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다. 이렇다 보니 장산에 깃들어 있는 수많은 유적 역시 푸대접을 온몸으로 받고 있다.


왜 장산국 관련 역사적 흔적들이 홀대를 면치 못할까? 그것은 바로 그 터전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관심에서 벗어남에서 비롯된 것으로, 자신이 발 딛고 사는 해운대의 뿌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 빚어진 일이라 할 수 있다.


김해 구지를 비롯한 금관가야만큼은 아니더라도, 장지와 장산국에 대해 해운대 주민들은 물론이거니와 해운대구청에서도 보다 더 관심을 기울여 주길 바라는 마음 그지없다.


/ 예성탁 발행인

덧붙이는 글

(메인사진설명) 지난 10월 18일(토) 장산 헬기장에서 제25회 장산제가 열렸다. 사진은 해운대동백춤소리 예술단 엄선미 부단장의 개천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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