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절물자연휴양림
어릴 때 만화로 된 삼국지(三國志)가 재미있어 시골 어린이들이 돌려본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 박종화의 삼국지를 읽었다. 이문열의 삼국지도 읽었는데 나이가 듦에 따라 소설의 주인공이 바뀌는 경험을 하였다. 어릴 때는 유비가 주인공이었다고 생각했는데 20대가 되니 관우가 주인공이구나 생각이 들고, 30대에 읽어보니 조조가 주인공이구나, 제갈량이 주인공이구나 생각도 들었다. 삼국지는 단순한 소설책이 아니다. 역사책이기도 하고 병법서이기도 하여 이간술, 미인계, 고육지계, 반간계, 허허실실, 36계, 화공술 등 손자병법을 방불하는 다양한 전술이 나온다. 수신, 권선징악, 충효, 안분지족 등 유교적인 처세술도 볼 수 있다. 수백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 중 가장 뛰어난 무장은 역시 관우(關羽)이다. 관우는 중국인들에게 거의 신적인 존재로 재물신으로 추앙을 받아 중국의 가게나 식당에는 관우의 상을 모시고 있다. 무예가 가장 뛰어난 장수는 여포로 여포가 유비, 관우, 장비 세 사람을 상대로 싸우던 장면이 있었다.
요양병원에 처음 취업했을 때 나보다 10년 젊은 가정의학과 선생(이하 A과장)이 있어 내가 병원생활에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A과장은 병원장과 갈등이 생겨 내가 부임한지 석 달 만에 병원을 나가게 되었다.
출근하면 병원장과 의사들이 모두 모여 전체 병동 회진을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는 병원장이 “삼국지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관우”라고 말했다. 그런데 A과장이 “아닙니다. 삼국지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은 여포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도 어릴 때부터 삼국지를 몇 번이나 읽어 가장 싸움을 잘하는 장수는 여포로 알고 있었다. 병원장은 관우, A과장은 여포라고 계속 주장하여 병원장이 나에게 물었다.
“조 과장님, 삼국지에서 가장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관우이지요?”
A과장도 나에게 물었다.
“조 과장님, 여포가 싸움을 제일 잘했습니다. 정확하게 사실을 말해주십시오.”
나는 어릴 때 읽어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회진이 끝나고 진료실에 있으니 A과장이 찾아왔다.
“조 과장님, 삼국지에서 여포가 제일 싸움을 잘했다는 것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인데 왜 정확하게 말하지 않아 저를 실망시킵니까?”
“삼국지에서 누가 무예가 제일 출중한지는 중요한 것이 아닌데 구태여 상급자인 병원장의 말이 틀리다고 반박할 필요가 있을까?”
A과장은 의료에 대한 정보를 이야기할 때도 병원장의 말을 자주 반박하였다.
A과장은 병원장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려주려는 의도이지만, 병원장은 자기에게 대항하고 심지어 모욕을 준다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A과장이 환자 보호자와 사소한 문제로 다툼이 있었는데 병원장이 이것을 트집 잡아 몇 년이나 열심히 근무한 A과장을 결국 해고하였다.
해고를 통보받은 A과장은 나에게 와서 하소연을 하였다.
“과장님, 나는 선하게 살아왔는데 원장이 나를 핍박하고 세상이 나를 핍박합니다.”
“어디 가서든 상급자의 말을 반박하지 말게. 상급자의 말을 고쳐주려고 하지도 말고 상대를 바꾸려고 하지도 말게.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네. 꼭 바꾸려면 자신을 바꾸는 게 제일 쉽다네.”
나의 조언이 적절한 도움이 되었을까?
조조가 유비와 단둘이 술을 마시며 “세상에 영웅은 당신과 나뿐이오”했을 때 유비는 천둥이 치자 젓가락을 떨어뜨리며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술상 밑으로 기어들어 겁쟁이 바보 행세를 하였다. 조조는 그런 유비를 보고 하찮은 인간이었구나 하고 경계를 늦추었다고 한다. 유비는 그 후 조조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세상을 삼등분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 영악한 인간 앞에서 잘난 체하는 것은 금물이라는 것을 삼국지에서 배우게 된다.
60세 이후에는 무슨 일이든지 우기지 말고 고집부리지 말자. 세상은 계속 바뀌고 어제까지 맞았던 것도 오늘은 틀리는 시대가 되었다. 60세 이상 되면 논쟁에서 이기려고 하지 말자. 내가 알던 것이 항상 진실은 아니다. 젊은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듣자.
해 질 무렵 비행기를 타고 떠난 적이 있다. 비행기가 서쪽으로 이륙하니 태양이 서쪽에서 찬란하게 떠오르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아! 태양이 서쪽에서도 떠오르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