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은 ‘열 달’ 동안 어머니 뱃속에서 온전히 성장하여 세상에 태어난다. 이것이 한국인의 인간탄생에 관한 전통관념이다. 한국인에게 인간의 탄생은 단순한 생물학적 과정이 아니다. 어머니 뱃속에서 ‘열 달’을 온전히 채워 세상에 나오는 것은, 완전하고 온전한 존재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깊은 상징이다. 여기서 ‘10’이라는 숫자는 사람의 손가락이 10개인 것처럼, 완전함과 온전함을 상징하는 완전수(完全數)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일각에서 전통적인 ‘열 달’이라는 개념이 과학적 사실을 무시한 채 관습에 의존한 결과라고 비판하며 전통관념을 경시하는 주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주로 서양의학 전문가인 그들은 정확한 임신 기간이 40주, 280일임을 강조하며, 양력 한 달 30.5일 기준으로 약 ‘9개월 남짓’, 음력으로도 한 달 29.5일 기준 ‘9개월 15일’ 정도라는 것이다. 그들은 ‘1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문화적 상징성 때문에, 실제 과학적 수치와는 다른 ‘10달’이라는 관념이 널리 퍼졌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그들의 해석은 오판이다. ‘10달 280일’이라는 한국인의 관념은 단순한 문화적 상징이나 직감, 혹은 날짜 계산의 오류로 치부될 수 없다. 오히려 이는 현대 과학의 한계를 뛰어넘는, 더 높은 수준의 초과학적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단지 그들은 아직 이 심오한 진실을 알지 못할 뿐이다.
1976년 영국의 심리학자 해리 맥거크(Harry McGurk)와 존 맥도널드(John MacDonald)는 유아의 언어 발달을 연구하던 중 획기적인 사실을 발견했다. 사람들에게 ‘바’소리의 입 모양이 담긴 영상에 ‘가’소리를 덧씌워 보여주자, 모두 ‘다’ 또는 ‘라’와 같이 두 소리의 중간에 해당하는 소리로 인식했다. 이 놀라운 발견은 인간의 뇌가 시각과 청각 같은 여러 감각 정보를 단순히 따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결론을 내린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달이 초하루에서 다음 초하루 혹은 보름에서 다음 보름까지 그 모습이 변하는 시간 즉, 삭망월은 29.5일이다. 그러나 실제로 순수하게 달이 지구를 한 바퀴 공전하는 시간 즉, 항성월은 27.3일이다. 삭망월과 항성월의 차이 2.2일은 달이 지구 주위를 도는 동안 지구도 역시 태양 주위를 돌기 때문에 나타나는 지연현상이다. 이때 인간은 한 달을, 시각적으로는 삭망월 ‘29.5일’로 인식하고, 동시에 항성월 ‘27.3일’간 달, 지구, 태양 사이의 인력을 무의식적으로 몸을 통해 느낀다. 그 결과 인간의 두뇌는 삭망월 ‘29.5일’과 항성월 ‘27.3일’의 중간쯤에서 한 달을 28일이라 최종판단하는 것이다. 물론 29.5일과 27.3일의 평균은 ‘28.4일’이다. 그러나 ‘0.4일’의 간극은 지구가 다시 태양을 중심으로 도는 지구계(Earth-Moon system) 전체의 공전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보인다. 아마 미래의 과학이 이 간극 또한 온전히 증명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어떻게 이 ‘28일’의 과학을 ‘10달’ 관념에 적용했을까? 달의 공전 주기(항성월 27.3일)와 삭망월(29.5일) 사이의 평균값인 28.4일에서 도출한 28일은 단순히 수학적 계산의 결과가 아니다. 28일은 바로 여성의 평균 생리 주기와 일치한다. 따라서 이는 여성의 몸이 무의식적으로 달의 28일 주기를 감지하고 반응해왔음을 시사한다.
한국인의 ‘10달’관념에는 바로 여성에 대한 인본주의적 존중이 내재되어 있다. 한국인들은 자연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삶을 통해, 여성의 몸이 우주의 섭리를 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여성의 신체 주기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이를 인간 탄생의 신성한 과정에 그대로 투영했다. ‘임신 10달’이라는 한국인의 관념은 과학적 지식이 부족해서 생긴 미신 같은 관습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여성의 신성함을 존중하고 자연과 함께 조화롭게 살아가려는 깊은 철학이 담긴, 우리 고유의 고매한 과학적 유산이다.
정승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