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병동 102호실. 이 방은 시간이 멈춰 있다. 신의주 출신 김 할머니(80세)는 6·25전쟁 때 여섯 살의 나이로 아버지 손을 잡고 38선을 넘어 월남하신 분이다. 전쟁통에 어머니와 형제자매도 모두 흩어지고 부산에 내려와 자식들 낳고 살았는데 지금은 관절통과 치매 증세로 입원 중이다.
치매환자라도 어릴 때의 기억은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푸른 물이 흐르던 압록강변의 풍경에 대해 자주 말씀하신다. 압록강! 우리들의 기억 속에 얼마나 멀어져 있던 강이던가. 주위에 고향이 이북인 사람이 종종 있는데 이북 출신은 대체적으로 아버지가 엄격하며 생활력이 강하고 근검절약정신이 뛰어나 잘 사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님이 일정시대 만주에서도 살았고 함경북도 나진에서 오래 사셔서 어릴 때 시골에서 동네 사람들이 어머니를 나진댁이라고 불렀던 기억이 난다.
임 할머니는 87세(1938년생)로 일본 야마구치에서 태어나 해방 후 귀국한 분이다. 일본에서 태어나 10년이나 일본말을 썼으니 일본말을 잘 하신다. 일정시대 야마구치에는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농촌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요즘도 야마구치에는 한국인 2, 3세들이 많이 산다고 들었다. 이방 할머니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지금 이방 102호실은 해방 전이기도 하고, 6·25전쟁이 한창인 신의주이기도 하다.
강 할머니는 86세(1939년)로 히로시마의 변두리에 사셨다고 한다. “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터지는 것을 직접 내 눈으로 보았어.” 역사박물관의 벽에 붙은 사진 속에서 사람이 튀어나와 대화를 하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킨다. 30년대생, 40년대생만큼 격랑의 세월을 산 세대도 드물다.
야마구치댁 할머니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야마구치에서 온 재일교포가 기억난다. 1970년인가 중학생 때였다. 이모부님이 사업을 하셔서 부유하게 살다가 어느 날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신 후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이모님은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고 살다 마당에 우물까지 있던 대궐 같은 집까지 날리고 시골의 우리집 옆에 단칸방을 얻어 살았다. 이종사촌 누나는 키가 크고 예뻤다. 머리 뒤로 내려진 사각형 파란 천에 하얀 줄무늬가 그려진 멋진 세일러 교복을 입고 방학 때마다 우리집에 왔었다. 사촌누나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겨울에 일본 야마구치에서 재일교포 청년이 마을에 찾아와 신부를 구하는데 수소문 끝에 사촌누나가 선택되었다. 재일교포 청년은 턱이 사각형으로 신체가 건장하고 눈썹이 짙고 눈이 매서웠다. 그 남자는 우리집에 자주 왔었는데 하루는 친지들 앞에서 대나무 지팡이를 칼처럼 세워 두 손으로 잡고 무사도(武士道)에 관한 맹세를 크고 엄숙하게 읊조리는 것을 들었다.
‘무사는 비겁하게 살지 않는다. 무사는 평생 청렴하게 산다. 무사는 항상 주군에게 복종한다.’이런 내용이라고 사촌누나가 말해주었다. 야마구치에서 온 그 남자와 몇 주를 같이 지낸 후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부산행 기차를 타고 사촌누나가 울면서 떠나던 날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이모님은 오랫동안 우셨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이곳을 떠나 일본에 가서 잘 살 텐데 왜 이모님은 저렇게 오랫동안 서럽게 우시는 것일까? 60이 넘어보니 이제야 이모님이 왜 그렇게 우셨는지 이해가 된다.
당시는 한국 여성이 잘 사는 일본으로 시집을 많이 갔다. 요즘 동남아 등지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온 청년들과 결혼이주여성을 종종 본다. 이들을 보면 야마구치 청년에게 시집간 사촌누나가 생각난다. 1970년대 일본은 아주 잘 살았고 우리나라는 가난하지만 ‘잘 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하며 온 국민이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던 시기였다.
요즘 일본 여성이 한국 남성과 국제결혼을 많이 한다는 뉴스를 들었다. K팝·드라마를 보고 한국을 동경하며, 한국 청년은 잘 생기고 일본 청년에게서 볼 수 없는 화끈함과 대담성, 성실성, 여성에 대한 배려심이 있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리라.
거의 반세기 만에 우리나라가 이렇게나 발전을 한 것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그 힘든 세월을 버텨온 할머니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 아버지 세대가 죽을 힘을 다해 땀과 눈물로 이루어 놓은 세상에서 복을 누리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