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 상산마고당
장산의 마고당(麻姑堂)은 동쪽 사면의 중턱, 천제단(天祭壇) 옆 너덜겅 사이에 있다. 작은 돌담으로 성역화한 공간 안에 한 칸짜리 붉은 벽돌로 지어진 신비로운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당(堂)집이다. 마고당은 여성 창세신(創世神) 마고(麻姑), 그러니까 ‘마고할미’, 경상도 말로는 ‘마고할매’를 모시는 ‘신당’이다.
한국인의 신화적 기억 속에 마고할미는 자연물을 만든 ‘창세신’이자 ‘대지모신(大地母神)’이다. ‘마고할미’의 신이한 행적에 대한 이야기는 전국적으로 많은 지역에서 전해온다. 주로 ‘거인여성신’이 우리의 산천을 창조한 이야기들이다. 지역적 특색에 따라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나, 제주도의 ‘설문대할망’이야기가 대표적이다. 할미가 치마에 흙을 담아 옮기다 흘린 것이 산이 되고, 던진 돌이 섬이 되었다거나, 일하다 소변이 마려워 배설한 결과 강이나 하천이 만들어졌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렇게 마고할미에 대한 신앙의 흔적은 전국적으로 분포하지만 정작 마고할미를 모시는 신당은 몇 되지 않는다. 현재까지 전해오는 대표적인 신당 혹은 유적으로는 장산 ‘마고당’ 이외에 지리산 ‘노고단(老姑壇)’, 금정산 ‘고모당(姑母堂)’, 삼랑진 천태산 ‘마고대신당’ 등이 있다.
마고 신앙의 전통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에도 전해온다. 중국의 마고는 젊고 아름다운 선녀의 모습으로 장수와 불로장생을 관장하는 신선이다. 반면, 한국의 마고는 거대한 몸집으로 산과 강을 창조하는 노파, 즉 ‘할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보다 근원적인 신격을 보인다.
한편 신라 눌지왕 시기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이 지었다는 『부도지(符都誌)』에는 ‘마고’가 태초의 우주 만물 및 인류를 창조한 ‘창조신’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럼에도 『부도지』의 사료적 가치에 대한 학계의 평가가 부정적이다. 그러나 ‘마고’의 ‘인류 창조신’으로서 그 신화적 의의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우리의 인접 문화권에도 이와 비슷한 성격의 여성 창조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즉, 몽골 신화 속의 대지모신 ‘에투겐’, 일본 신화 속의 ‘이자나미’는 모두 생명 창조를 관장하는 여신이다.
전통사회에서 할미는 단지 노년 여성이라는 의미를 넘어, 강력한 사회적·종교적 권위를 지닌 존재로 인식되었다. 할미는 생명의 탄생과 소멸을 관장하며, 가족과 공동체의 안녕을 지키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런 할미의 권위가 무참히 훼손된 사례가 있다. 강원도 삼척에는 ‘마고할미’가 ‘서구할미’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초기의 창세신적 성격이 퇴색되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요괴의 모습으로 변이된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는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내세운 조선 사회에서, 여성을 남성 중심의 사회 질서를 위협하는 존재로서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조성했던 시도와 관련이 있다.
원래 한국의 전통관념으로 남녀는 사회적 평등관계에 있었다. 적어도 조선 중기까지 여성도 친정의 재산을 물려받았고, 혼인 후 여성은 자식이 장성할 때까지 친정에서 살았으니, 한국 남성이 결혼할 때 쓰는 ‘장가간다’라는 무의식적 표현은 이런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보호함으로써 진정한 평등과 화합을 이룰 수 있다는 우리의 전통 가치관을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정승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