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관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청동기시대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마을 복원 모형
정관박물관은 부산시의 북쪽 기장군을 대표하는 박물관으로서 정관신도시 조성 사업으로 인해 사라지게 될 문화유산에 대한 보존 방안으로 건립하게 되었다. 특히 기장군 일대에서 발견된 대규모 삼국시대 마을 유적과 다량의 생활유물을 함께 선보여 삼국시대 생활사 박물관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정관 지역은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거칠산국의 영역이다. ‘기장 아기장수의 전설’에 등장하는 반월성과 진계등은 물론이며 천마산 등의 지명이 아직까지 전하고 있다.
정관박물관의 상설전시실 <소두방의 생활>에서는 정관읍 가동 유적에서 발견된 4~5세기 삼국시대의 마을 유적, 부산-울산 간 고속도로 건설 과정에서 조사된 청강·대라리의 대형 제사 건물지와 나무울타리, 철마읍 고촌 유적에서 드러난 수공업 전문 집단 거주지와 포장도로 등 다양한 성격의 삼국시대 마을 유적 출토품으로 삼국시대 생활상을 재현하고 있다. 소두방은 정관의 옛 지명이다.
정관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가야의 판갑옷(아래)
◇ 거칠산국 - 신라 - 가야 - 신라의 순으로
<소두방의 생활>과 <소두방의 기억>의 상설전시실을 돌아보면 삼국시대 이전의 것으로 보이는 청동기 유물이 많이 보인다. 이들 청동기 유물은 거칠산국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며 이어 가야유적이 눈에 들어온다. 가야 굽다리접시며 가야군의 갑옷인 판갑옷 등은 이 일대가 가야세력권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거칠산국을 병합했다는 신라의 유물은 어디로 갔는가? 역사적 사실에 따라 신라가 거칠산국을 병합한 것이 맞는다면 박물관의 유물들은 신라가 점령한 기간이 극히 짧았음을 보여 준다.
서기 79년 탈해왕 때 거도장군이 기만전술로 거칠산국을 병합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무슨 연유에서인지 이 일대에서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가야가 이 일대를 장악했다가 서기 400년경 신라를 구원하러 온 고구려군에 밀려나고 다시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고 여겨진다.
정관박물관에 청동기 유물에서 철기문명으로 넘어가는 초입의 가야유물이 대거 전시된 것으로 볼 때, 이 일대가 거칠산국에서 신라로 계속 이어진 게 아니라 중간에 가야 세력이 개입했음을 뚜렷하게 볼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정관박물관은 삼국시대 생활상을 밝혀 준다고 하기보다 가야가 포함된 4국 시대의 생활상을 보여 준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 예성탁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