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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 이순신 장군을 만나다
  • 예성탁 발행인
  • 등록 2025-07-29 17: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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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운대문화원 역사기행
  • 한산도 기행일기


왜선이 저 섬 모퉁이에서 100척이나 들이닥쳐도 모를 정도로 안개가 짙은 날이었다. 이순신 장군을 만나러 한산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자칫 우리 배가 왜선 쪽으로 다가가면 어쩌나 걱정마저 들었다. 


한산도에서 여객선이 하마처럼 입을 쩍 벌리더니 사람과 자동차를 한꺼번에 토해냈다. 안개에 둘러싸여 신비감마저 주는 한산도에서 황구 전문위원의 한산도와 이순신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렇지 않아도 해운대문화원에서 통영으로 이동하는 동안 황 전문위원께 이순신과 원균에 대해 궁금한 점을 여쭙고 싶었는데 1호차 2호차로 갈라놓는 생이별 속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제승당 가는 길. 호수처럼 잔잔한 수면으로 안개가 왜적처럼 밀려든다. 그래도 우린 승리를 만드는 제승당으로 향하니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제승당 입구 대첩문에서 창을 든 수문장의 창을 잡고 힘을 줘도 약간 흔들리기만 할 뿐 빼앗지 못했다. 



대첩문


제승당에서 왜란으로 희생한 수많은 영령들의 해탈을 빌며 이제 편히 쉴 것을 권했다. 지금은 기와를 덮은 큰 건물들이지만 당시엔 초가지붕의 볼품없는 건물이었다는 황 전문위원의 해설에도 초라한 제승당의 모습이 상상되지 않는 건 아마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이순신 장군의 위명에 다 묻혀 버린 탓이리라. 



이순신 장군이 집무했던 제승당


저 멀리 화살 과녁이 안개에 가려 희미하게 보인다. 발길을 돌려 보니 활을 쏘았다는 건물이 나오고 바다 건너 과녁이 점차 뚜렷하게 보인다. 여기서 이순신 장군과 수군들이 막걸리를 걸고 활쏘기 시합을 했을 것이다. 화살이 바닷바람을 뚫고 나아가야 하므로 바람까지 고려해 저 먼 과녁을 맞혔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정보전이다. 왜군의 거짓 정보로 빚어진 조정의 명을 거역할 수밖에 없었던 이순신 장군은 한양으로 압송되어 모진 고문과 옥고를 치르고 백의종군에 나설 때 그를 면회하러 오다 도중에 세상을 떠난 노모의 소식을 듣는다. 여기다 장군의 뼈를 갈아 만든 수군의 궤멸 소식까지 들으며 다시 전쟁터로 내려오던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를 대신한 원균은 바다가 아닌 육지에서 왜군의 칼에 맞아 최후를 맞는다. 최근 원균의 목 없이 몸뚱이만 묻은 무덤이 발견되었다는 소식도 황 전문위원께 들었다. 


원균이 죽으면서 무적함대도 함께 죽었다. 남겨진 13척의 배를 이끌고 왜적을 맞은 이순신은 마지막 전투 노량해전에서 큰 결심을 한 것 같다. 갑옷도 입지 않고 전쟁에 나서 총탄을 맞고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왜 장군 갑옷과 투구를 벗어던졌을까? 그리고 지휘석이 아닌 갑판 맨 선두에 서서 전투에 임했을까? 

※이순신 장군의 죽음에 대해선 다른 의견도 있습니다.


- 2025년 6월 20일 전등 아래서 


/ 예성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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