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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산국을 찾아서 ⑦ 배산산성은 누가 쌓았나?
  • 편집국
  • 등록 2025-07-09 17:5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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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79년 신라 탈해왕 때 거도 장군이 거칠산국을 병합하고 거칠산군을 세웠다는 삼국사기 기록이 있다. 그런데 거칠산국이 어디에 존재했으며 거칠산국의 치소*는 어디에 있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 실마리를 찾고자 거칠산국이 아닌 거칠산군과 관련 깊다는 배산산성을 다시 들러본다.

배산성지 - 연제구 연산동에 위치한 배산(盃山)의 중턱과 정상부에 있는 옛 성터


연산동 소재 배산은 아파트 숲속에 솟은 언덕 형태라 늘 사람들이 붐빈다. 지금까지 4차례의 조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배산산성은 배산의 두 봉우리를 중심으로 산의 9부 능선을 두르고 있으며 둘레가 1,170m에 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산성에는 처음 쌓은 부분과 보수하여 새로 쌓은 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다. 그렇다면 최초로 배산산성을 쌓은 세력은 누구일까? 


성의 내부에는 건물터 5기와 집수지 2기가 있다. 집수지 2기는 나란히 붙어 있는데, 1호 집수지는 직경 최대 9.2m, 2호 집수지는 13m이며, 두 집수지 모두 3단으로 이루어진 계단식 형태를 하고 있다. 집수지 내에서는 여러 유물로 미뤄볼 때 6세기 중엽에서 7세기 중엽 사이에 건축된 신라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 연산동 고분군 세력과 배산산성

 

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을 참조한 내용대로 배산산성은 연산동 고분군 세력들과 관련이 깊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나? 바로 연산동 고분군 세력들이 최초 배산 일대를 차지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초기 연산동 고분은 5세기 후반경부터 금관가야 세력들이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통해 서기 400년 신라를 구원하러 온 고구려군에 패한 금관가야의 복천동 고분군 세력들이 온천천을 건너 황령산과 배산으로 후퇴했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다. 


이 일대로 피신한 금관가야 세력들이 무방비 상태로 있지는 않았을 것이고, 나름대로 고구려군의 침공에 대비해 뭔가 조치를 취했을 것이라 여겨진다. 그 대비책이 배산 꼭대기를 중심으로 쌓은 산성일 수 있다는 생각이다.    


고분의 축조방식이나 유적들의 변화대로 이 일대는 점차 신라의 영향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애초부터 거칠산국과는 관련이 없어 보인다. 다만 신라가 거칠산국을 병합한 뒤 거칠산군을 어딘가에 설치했던 치소를 배산산성 근처로 옮겨온 것이라면 수긍할 수 있다. 

배산산성 현장에서 마을 주민들에게 들은 바에 따르면 “아주 오래전 성을 쌓을 때 돌이 모자라 배로 실어와 쌓았다”고 하니 배산산성 돌의 출처를 밝혀보면 성을 쌓은 세력들의 정확한 정체를 밝히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치소(治所) : 어떤 지역의 행정사무를 맡아보던 기관이 있던 곳


/ 예성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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