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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 항일촛불광장의 주인공은 누구?
  • 편집국
  • 등록 2025-06-17 15: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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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 항일촛불광장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지척에 놓인 장산 항일촛불광장을 찾아보자. 그간 본지에서 항일촛불광장임을 알 수 있게 태극기 게양이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걸개그림 등을 광장에 설치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다음은 장산 항일촛불광장에 있는 안내판 내용이다.

 

1926년 2월 동래고보 기숙사에 있던 학생 한 명이 사감 선생을 찾아가 “음력 섣달 그믐날 밤이라 몹시 쓸쓸하므로 빵이라도 좀 사주세요”라고 말했다. 이에 당직 사감 일본인 마쓰다는 “조선 사람들은 걸인 근성이 있다”며 크게 꾸짖었다. 이 사실을 정인섭 선생이 알게 돼 마쓰다를 찾아가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인데, 학생 면전에서 민족 모욕 발언을 하는 너도 교육자냐”라며 막대기를 휘두르자 마쓰다는 달아났다. 이 소문이 전교생에게 퍼지자 학생들은 격분하여 2월 어느 날 밤 2시를 기하여 장산 절골계곡(양운폭포에서 대천공원 사이 계곡으로 과거 절이 많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에 모여 촛불을 밝혀 들고 마쓰다 배척을 결의한 후 동맹휴학을 단행하였다. 동래고보 항일운동의 첫 장을 기록한 장산 항일촛불의거는 부산의 학생항일운동의 근원이다.



위 안내판의 주인공은 당시 동래고보 학생이었던 박영출이다. 하지만 본문 어디에도 박영출에 대한 언급이 없이 항일촛불의거의 원인과 실행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있는 느낌이다. 항일촛불의거를 누가 주동했으며 그 후 항일운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도 중요한 대목이다. 그래야만 항일촛불의거가 생명력을 가지게 되며 촛불광장의 존재 가치도 생긴다.

 

◇ 독립투사 박영출 선생


항일촛불의거의 주인공 이야기를 더 살펴보자. 의거 후 학교 당국은 주동자 색출에 나서 많은 학생들이 처벌당하기에 이르렀다. 학생회장이었던 5학년 박영출 학생은 주동자임을 자처하여 졸업 1개월을 앞두고 퇴학을 당했다. 그 후 독립운동으로 경찰에 체포돼 대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심한 고문 후유증으로 1936년 36세 나이로 옥사했다. 

어렵게 예산을 들여 항일촛불의거가 일어났던 장소를 찾아 복원하고 안내판을 세웠다. 그럼 그 정신이 잘 살아나게 박영출 선생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을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  


/ 예성탁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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