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대 농바위
장산 천제단은 장산의 중턱에 위치해 있다. 천제단이라면 산 정상 부근에 있을 법한데 조금 이상하다. 그러나 이상할 것 없다. 천제단은 산 정상 부근에 있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긴 하나, 꼭 정상 부근에만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광주 무등산의 천제단 역시 산 중턱에 있다. 한편, 근래의 장산 천제는 매년 정월에 좌동향토문화보전사업회 사무실에서 치러지고 있다. 사무실은 평지에 있다. 그러니 결국 장산의 천제단이 평지에 내려온 셈이 된다. 보존회 회원들이 연로하여 추운 겨울에 산 중턱까지 제수를 나르고 천제를 봉행하기 어려운 현실에 맞추어 그리되었다.
전지전능한 천신은 어디든 나툴 수 있으며, 어디에 있든 그 권위와 신능(神能)이 격하되지 않는다. 과거 전통시대에 어머니들이 장독대에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늘님(칠성님)께 가족의 안녕과 발복을 빌었으니, 그때도 실상 천제단은 집안의 장독대가 있는 평지였다. 아마 장산에도 무등산에도, 이전에는 천제단이 산 정상 부근에 있었을 것이다.
바닷가에도 천제단이 내려올 수 있다. 불과 10여 년 전까지, 해운대 바다와 백사장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달맞이 문탠로드 중간, 전망대 부근에 ‘농바위’라 불리는 ‘남근석’ 하나가 서 있었다. 전망대 공사 과정에서 훼손되어 지금은 사라졌지만, 멀리 남서쪽으로 보이는 이기대 ‘농바위’와 함께, 그 생긴 모습이 남사스럽다 하여 원래 ‘용바위’의 ‘용 룡(龍)’ 위에 ‘대 죽(竹)’ 부수를 덧붙여 ‘장롱 롱(籠)’으로 바꾸어 ‘농바위’라 불렀던 아주 잘생긴 남근석이었다.
달맞이 남근석에는 해녀와 관련된 전설이 전해져 왔다. 해녀들이 물질하러 들어갈 때, 농바위를 장롱 삼아 옷을 벗어 보관했다는 것이다. 바다와 제법 떨어진 가파른 언덕 위에 위치한 장롱에다 해녀들이 옷을 보관했다는 이야기는 실용적 논리에 맞지 않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전설의 신화적 문법으로, 또 ‘용(龍)’이 ‘농(籠)’으로 왜곡된 시대적 상황을 감안해서 재해석해야 할 것이다.
삼척시 원덕읍 해신당 - 해랑에게 바치는 공물은 나무로 깎은 남근이다.
바닷가, 특히 동해안에는 여서낭당에 남근을 공물로 바쳐 여성신의 상징인 바다의 풍요를 비는 신앙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척시 원덕읍 해신당에 모시는 해랑(海娘)에게 바치는 공물은 나무로 깎은 남근이다. 강릉 강동면 안인진 2리의 해신당에도 이전에는 목각 남근을 바쳤다. 이러한 신앙전통은 비단 우리 문화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가 나일강에 정액을 뿌림으로써 나일강의 범람과 농업의 풍요를 기원했다는 전승이 있다. 고대의 통치자는 단순한 정치권력자가 아니라 신의 대리자로 여겨졌다. 따라서 달맞이 고개의 농바위는 바다의 풍요를 기원하는 대상이요, 바닷가에 강림한 천신의 또 다른 화신(化神)으로 기능한 것이다.
이러한 문화 전통은 한국인의 집단무의식 속에 내재된 천신숭배 사상과 음양 간 조화의식의 발로이며, 세계문화 속에서 우리문화의 독창성을 발휘하기 위한 기반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해운대구의 행정관료들은 이런 문화전통을 하찮은 과거의 미신 혹은 외설로 치부하여 함부로 훼손하는 우를 범했다. 반면, 우리 구의 근시안적인 문화정책과 달리 삼척시는 해신당을 잘 보존하여 지금은 외국인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는 국제적인 관광자원으로 육성하였으니 귀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승욱 / 문학박사 · 대동민속연구소장